IT/과학
성급한 분자 '라디칼', 이웃 따라 앉는 자리·이동 경로 바뀐다
- 포스텍·카이스트 공동연구팀, 100피코초 순간 포착
- 주변 분자 구조가 라디칼 위치와 움직임 결정
주변에 어떤 분자가 있는지에 따라 반응성이 매우 큰 '라디칼' 분자의 위치와 이동 경로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화학과 김경환 교수 연구팀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황승준 교수팀과 공동으로 라디칼과 주변 분자의 첫 만남을 100억분의 1초(100피코초) 단위로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주변 분자의 구조가 라디칼이 머무는 위치와 움직이는 범위를 바꾼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미국화학회지(JACS)'에 게재됐다.
라디칼은 쌍을 이루지 않은 전자를 가진 분자로, 새로운 화학 결합을 만드는 데 유용하지만 반응성이 높아 제어하기 어렵다. 신약이나 기능성 소재 개발에서는 원하는 위치에서만 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선택성'이 중요한데, 라디칼의 움직임을 통제하기는 어려웠다.
연구팀은 라디칼과 주변 분자가 결합 직전 짧게 머무는 '첫 접촉' 순간에 주목했다. 이를 관찰하기 위해 고속 카메라가 날아가는 총알을 포착하듯 아주 짧은 시간 간격으로 분자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시간 분해 엑스선 용액 산란(TR-XSS)' 기법을 사용했다.
연구팀은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KEK)의 방사광가속기에서 벤젠과 메소톨루엔 용액에 각각 분자 요오드를 준비했다. 이후 레이저를 이용해 요오드 분자를 쪼개 라디칼을 생성하고, 엑스선으로 100피코초 뒤 라디칼과 주변 분자가 가깝게 접촉하는 '접촉 복합체'가 형성된 것을 확인했다.
두 용매에서 라디칼의 움직임은 다르게 나타났다. 육각형 고리 구조의 벤젠에서는 라디칼이 고리 가장자리 근처에 자리 잡고 회전목마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반면 벤젠 고리에 '메틸기'라는 곁가지 3개가 붙은 메소톨루엔에서는 라디칼이 곁가지가 없는 방향을 선호하며 좁은 범위에서만 움직였다.
이는 주변 분자의 작은 구조적 차이가 라디칼이 선호하는 위치뿐만 아니라 이동 경로까지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주변 환경을 정교하게 설계하면 라디칼을 원하는 위치로 유도해 의도한 반응만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경환 교수는 "이번 연구는 최종 생성물로 반응 과정을 추론하던 것에서 나아가, 라디칼과 주변 분자 사이의 단수명 접촉 상태 구조를 직접 규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실제 합성에 사용되는 반응물로 연구를 확장하면 원하는 반응을 유도하는 분자 환경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한국연구재단 연구 프로그램, 기초과학연구원,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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