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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자가 가르친 여덟 박, 딸과 제자들이 춤으로 잇는다

  • 11월 14일 윤이상기념관서 ‘통영의 춤, 한정자’… 통영춤연구회 제12회 정기공연

두 박에 발을 떼고, 두 박에 붙인다. 다음 두 박에 무릎을 굽혔다가 마지막 두 박에 일어선다. 통영여고에서 시작한 승전무 수업이 충렬여상으로 이어진 뒤, 한정자 선생은 목요일 특별활동 시간마다 이 여덟 박을 노래하듯 셌다. 방과 후에는 학생들이 선생의 무용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연습을 이었다.

그 여덟 박이 2026년 11월 14일(토) 오후 7시 통영 윤이상기념관 메모리홀 무대에 오른다. 통영춤연구회가 국가무형유산 승전무(통영북춤) 보유자 한정자 선생의 85세를 기념해 마련한 ‘통영의 춤, 한정자’다. 부제 ‘춤추는 그게 즐겁고 좋아’는 국가유산청이 2025년 펴낸 한정자의 구술 자서전에서 따왔다.

올해 창립 12주년을 맞은 통영춤연구회는 한정자의 춤맥을 이어가는 춤벗들의 모임이다. 딸 김정련이 어머니의 제자들을 모아 세웠고, 지금은 제자 이은미가 회장을 맡고 있다.

첫 춤은 딸의 생신 인사다. 김정련이 어머니에게 궁중춤 〈춘앵전〉을 바치면 한정자의 삶을 따라 다섯 장의 무대가 이어진다. 첫째 장에서 연구회 회원들은 입춤과 굿거리로 선생의 어린 시절을 그린다. 1942년 통영에서 태어난 한정자는 할머니가 운영하던 호남여관에 묵은 창극단원들을 보며 춤을 접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춤과 창을 배우러 다니던 아이는 여관 2층 다다미방에 또래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짠 춤을 가르쳤다.

둘째 장 〈나그네 하루〉에서 김정련은 갓을 쓰고 바랑을 멘 나그네가 된다. 젊은 시절 어머니가 추었던 춤이다. 그때의 공연 사진과 훗날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이 춤을 재구성하는 바탕이 됐다.

셋째 장 ‘배우고, 다시 가르치다’에는 딸이 어머니의 선생이 된 사연도 있다. 한정자는 통영의 방학 강습회에서 한영숙에게 배웠고, 서울 김진걸무용학원에서 춤의 기본을 익혔다. 황무봉무용연구소에서도 수련했다. 제자를 가르치던 시절에도 춤 소식이 들리면 찾아가 낯선 동작을 따라 해 보곤 했다. 대학마다 춤의 기본을 가르치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던 때, 딸이 경희대에서 익혀 온 방식도 기꺼이 배웠다. 그렇게 배운 동작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통영 제자들의 수업으로 이어졌다.

이은미가 한정자를 처음 만난 곳은 통영문화원이었다. 향토사를 배우러 갔던 그는 선생의 권유로 서른을 넘어 춤을 시작했고, 대학 무용학과에 편입해 2024년 졸업했다. 이번에는 자신에게 춤을 권했던 스승에게 한영숙류 살풀이춤을 바친다. 김정련의 제자 박혜경은 김백봉류 부채춤을 춘다.

넷째 장의 제목은 한정자가 은사에게 건넨 대답에서 왔다. 한정자가 통영여중고에 다니던 시절, 이민기 교감은 발표회나 학예회를 앞두고 그에게 춤을 맡기곤 했다. 그럴 때면 한정자는 무용반 학생 대여섯 명을 집 2층 다다미방에 모아 함께 춤을 맞췄다. 훗날 승전무 복원이 시작되자 이 교감이 그 춤을 배워 학생들에게 가르쳐 보겠느냐고 물었다. 한정자가 답했다. “내가 하겠습니다.”

은사의 부탁으로 한정자가 승전무를 처음 가르친 곳은 모교인 통영여고였다. 1966년 정순남에게 배우기 시작한 그는 여고 특별활동 시간에 북춤을 맡아 복원 초기부터 무용반 학생들과 연습했다. 입춤으로 발 디딤부터 가르쳤고, 문화재 지정 조사를 위한 촬영을 앞두고는 학생 네 명을 골라 학원에서 따로 지도했다.

새 북의 높이를 정할 때는 스승의 몸이 잣대가 됐다. 옛 북이 배꼽까지 왔다는 정순남의 말을 듣고 한정자는 그 높이를 자로 쟀다. 새 북을 맞추러 통영과 서울을 오가며, 스승보다 키가 큰 자신과 동료들이 치기 편하게 그보다 10㎝가량 높여 달라고 했다. 북틀을 맞추고 칠할 빛깔을 고를 때도 스승의 말을 따랐다.

스승이 간직한 낡은 한삼도 새 옷을 짓는 본이 됐다. 한정자는 그 한삼을 들고 포목점을 다니며 치수와 빛깔을 적었다. 저고리 소매는 손목에 건 한삼 윗부분을 덮도록 맞췄다. 푸른 몽두리 소매에 어깨부터 손목까지 댈 네 단의 색동은 바느질집에서 스승에게 옷감을 하나씩 보여 드리며 골랐다. 열여섯 학생이 입는 의상도 한정자가 손수 간수했다.

한정자의 회고에 따르면, 1972년 통영여고에 새 교장이 부임해 대학 진학 지도에 힘을 쏟으면서 학교의 승전무 수업이 끊겼다. 한정자는 충렬여상(현 충렬여자고등학교) 이사장을 거듭 찾아가 설득했다. 충렬여상이 승전무 전수학교로 지정됐고, 그해 한정자는 이 학교 전임교사로 위촉됐다. 한정자가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 승전무 이수자가 여럿 나왔다. 김정희는 중학생 때부터 한정자의 학원에서 춤을 배웠고, 충렬여상에서도 배움을 이어갔다. 충렬여상에서 한정자에게 배운 두 제자 김정희와 장영미는 훗날 승전무 전승교육사가 됐다.

1996년 승전무 북춤 보유자로 인정받은 한정자는 자신과 춤의 인연을 통영말로 이렇게 풀었다. “승전무가 나고, 나가 승전무다.”

넷째 장에서 제자들은 스승의 여덟 박에 맞춰 한 사위를 춘다. 마지막 장에선 북춤에 앞서 창사가 들린다. 춤에 곁들여 부르는 노래다. 한정자가 스승 정순남을 따라 부르며 익힌 그 노래 한 대목을 이제 전승자와 제자들이 부른다. 이어 통영북춤이 무대를 맺는다.

한정자는 구술 자서전에서 춤과 함께한 세월을 이렇게 돌아봤다. “내가 춤이 좋아서 했응께, 후회도 없어.”

관람료 전석 2만 원 · 공연 문의 통영춤연구회(010-403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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