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장실의 공용 환기 시스템이 코로나19와 같은 공기 매개 감염병의 확산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콜로라도 볼더대와 스페인 발렌시아대 등 공동 연구팀은 12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스페인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화장실 공용 환기구를 통해 이뤄졌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연구는 2020년 6월 스페인 산탄데르의 한 7층짜리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례를 분석했다. 당시 3층 거주자가 처음 확진된 후, 수직으로 위치한 4개 층 아파트에서 총 15명의 주민이 잇따라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연구팀은 감염자들의 바이러스 유전자를 염기서열 분석해 이들이 서로에게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확인했다. 이후 건물 내 공기 흐름과 압력을 측정한 결과, 화장실의 수직 환기구가 감염 경로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결론 내렸다.
이 아파트는 1969년에 지어져 화장실에 창문이나 환풍기 없이 '굴뚝 효과'를 이용하는 공용 수직 환기구만 설치돼 있었다. 굴뚝 효과는 실내외 온도 차로 공기가 자연스럽게 수직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는 원리다.
연구팀이 빈 아파트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 사람이 없음에도 높은 농도가 측정됐다. 이는 다른 세대에서 배출된 공기가 환기구를 통해 역류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를 '방 안의 유령' 같았다고 표현했다.
연구에 따르면 더운 날씨로 인해 환기구 내 기압이 변하거나 주방 환풍기를 켜는 경우, 공기 흐름이 역전돼 다른 집의 공기가 화장실 환기구로 유입될 수 있었다.
연구의 교신 저자인 셸리 밀러 콜로라도 볼더대 명예교수는 "아파트 문을 닫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환기 시스템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공기가 연결돼 있다면 멀리 떨어진 감염원으로부터도 병에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환기 시스템은 1975년 이전에 지어진 스페인 건물에 흔하며, 전 세계 다른 노후 건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연구팀은 스페인 당국에 노후 건물의 질병 전파 위험을 줄이기 위한 건축 기준 개정을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