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약물 분자가 두 개의 서로 다른 경로를 이용해 암 유발 단백질을 제거하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됐다. 기존 약물의 한계인 내성 문제를 극복할 새로운 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스트리아 분자 의학 연구센터(CeMM)와 영국 던디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단일 저분자 화합물이 두 개의 E3 리가아제 시스템을 동시에 활용해 표적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표적 단백질 분해'(TPD) 기술은 세포 내 단백질 분해 시스템을 이용해 불필요하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차세대 신약 개발 방식이다. 하지만 기존 분해 약물은 대부분 단일 경로에만 의존해, 암세포가 해당 경로를 변형시켜 내성을 획득하면 약효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이 개발한 약물은 암 유발에 관여하는 'SMARCA2/4' 단백질을 표적으로 한다. 이 약물은 두 개의 서로 다른 E3 리가아제(단백질 분해 유도 효소)를 모두 활성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암세포가 하나의 분해 경로를 차단하더라도 나머지 다른 경로가 작동하는 '분자 백업 시스템'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연구팀은 이 화합물의 화학 구조를 미세하게 변경하면 특정 E3 리가아제를 선택적으로 더 많이 사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는 향후 약물 개발 시 효능과 안전성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동 교신 저자인 게오르그 빈터 교수는 "단일 분자가 여러 분해 경로에 관여하게 함으로써 기존 분해 약물의 내성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레시오 시울리 교수 역시 "이 발견은 차세대 항암제를 설계하는 데 있어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한 매우 중요한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특정 표적에만 작용하는 정밀성을 넘어, 약물 내성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기능을 유지하는 '회복력'을 갖춘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