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주식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가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라도 투자자를 속일 만큼 정교한 외관을 갖췄다면 불법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리딩방 투자사기' 범죄단체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2024년 4월부터 7월까지 허위 투자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텔레그램 리딩방을 통해 투자자 62명을 모집해 총 84억3600여만원을 가로챘다.

이들이 사용한 허위 투자 사이트는 국내외 주가지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동하고 매수·매도 기능까지 갖춰 실제 증권사 HTS와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주문이 실제 증권사나 거래소로 전달되지는 않는 사기용 프로그램이었다.

1심은 A씨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봤으나 2심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해당 사이트는 피해자를 속이기 위한 수단일 뿐 실제 증권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자본시장법이 규정하는 '금융투자상품시장'에는 실제 매매가 이뤄지는 시장뿐 아니라, '통상의 주의력을 가진 평균적인 시장 참여자들이 실제 매매가 이뤄진다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춘 시장'도 포함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의 처벌 이유는 허가 없이 시장을 개설해 투자자 신뢰를 훼손하고 자본시장 전체에 위험을 초래했다는 점에 있다"며 "실제 매매가 이뤄졌는지 여부가 본질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실제 시세에 기반한 거래가 이뤄진다고 인식했고, 사이트 외관이 구체적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불법 시장 개설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결정했다. 이번 판결로 급증하는 리딩방 등 온라인 투자 사기 범죄에 대한 처벌 범위가 넓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