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의 지급보증을 내세운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에게 판매 증권사들이 손실액의 절반을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은행이 △△△증권과 ◇◇◇증권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중국 현지 규제인 '국경간담보 외환관리규정'(SAFE) 등록 관련 위험을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증권사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손해배상 지연손해금 기산점을 투자자에게 유리한 ABCP 만기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증권 등은 중국 ▽▽▽화공집단 자회사가 발행한 1억5000만달러 규모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1635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해 판매했다. 이 ABCP는 모회사인 ▽▽▽화공집단이 지급을 보증했지만, 중국 당국의 SAFE 등록이 필수적인 구조였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SAFE 등록이 불발될 수 있는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100% 개런티' 등 단정적인 표현을 쓰며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은 이 ABCP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화공집단의 다른 자회사가 채무불이행에 빠지면서 교차부도(Cross Default)가 발생했고, 결국 SAFE 등록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ABCP는 2018년 11월 9일 만기일에 상환되지 못했고, ○○은행은 투자금 전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1·2심은 증권사들이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며 손해의 5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2심은 손해 발생 시점을 '원심 변론종결일'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증권사들의 배상 책임과 50% 책임제한 비율은 그대로 인정했다. 하지만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은 ABCP의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한 '만기일'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이 물어야 할 지연손해금은 더 늘어나게 됐다.

재판부는 "피고 증권사들은 ABCP 발행·유통자로서 유동화자산 위험이 신용평가에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었음에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이는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