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의사당을 내려다보는 프레스 갤러리가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작가, 대통령 자문이었던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이름으로 개명됐다. 흑인 의원들이 주도한 이번 개명은 초당적 합의로 이뤄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공화당 소속 바이런 도널즈 플로리다 하원의원이 주도한 이번 프레스 갤러리 개명은 지난 1년간 흑인 미국인을 포함한 저명한 미국인들의 역사를 기념하는 방안을 참모진과 논의한 끝에 추진됐다.
도널즈 의원은 헌정 축하 연설에서 "프레더릭 더글러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미국인에 대한, 미국 가족에 대한 깊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글러스는 남북전쟁 당시 의사당에서 의회 절차를 취재하며 기사를 작성했다. 그의 공개 연설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및 북부 공화당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은 노예제 폐지에 대한 의원들과 대중의 지지를 결집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갤러리 입구를 내려다보는 명판 제막식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곳에 영예를 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며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분명히 그런 영예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활동가, 종교 지도자,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포함한 저명한 흑인 보수주의자들이 의사당 내 행사에서 의원들과 교류했다. 의회도서관 직원들은 더글러스의 삶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했다.
흑인 역사의 달과 흑인 역사에 대한 최초의 전국적 기념 100주년 기간에 열린 이번 축하 행사는 미국에서 인종, 역사,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해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맞물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스미소니언 협회의 역사 교육을 겨냥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은 스미소니언이 "분열적이고 인종 중심적인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미국과 서구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해롭고 억압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서사를 홍보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서명한 또 다른 행정명령은 미국 초중등학교에서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자나 억압자로서의 정체성을 채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연방 기관들에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반미적이고 전복적이며 해롭고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조장할 수 있는 교사들의 "세뇌"를 끝내기 위한 포괄적 전략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비평가들은 이들 행정명령이 인종과 정체성 관련 일부 공공 전시물의 국립공원관리청에 의한 철거, 백악관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 종료 노력과 함께 역사의 미화를 대변하며 궁극적으로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행정부 동맹자들은 이들 정책이 미국의 과거에 대한 지나치게 비판적인 서사에 대한 교정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흑인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조치를 옹호하며 더글러스의 생애 같은 개인의 승리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정식에 참석한 흑인 공화당 의원인 버지스 오웬스 유타 하원의원은 "제가 자랄 때 우리는 이렇게 했다. 우리는 우리의 흑인 영웅들에 대해 알았다"라며 "좋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면 사람들은 우리가 약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성공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도널즈 의원과 함께 개명 작업을 진행한 민주당 소속 스티브 호스포드 네바다 하원의원은 가능한 곳에서 초당적 합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호스포드 의원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당 간 협력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릴랜드주에서 태어난 더글러스는 젊은 시절 뉴욕으로 도망쳐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다. 그는 노예제 폐지를 위한 가장 영향력 있는 활동가 중 한 명이 됐으며 이후 워싱턴 의사당 지역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옹호했다.
해방 후 워싱턴 애너코스티아 지역에 그가 구입한 저택은 현재 국립공원이 됐다.
스스로 읽고 쓰는 법을 배운 더글러스는 아프리카계 후손의 비인간화를 맹렬히 비난했으며 생애 동안 수많은 영향력 있는 연설을 했다. 1852년 그의 연설 "노예에게 7월 4일은 무엇인가?"는 국가 건국 이념과 노예제 수용 사이의 모순을 규탄했다.
1867년 에세이에서 더글러스는 의회가 흑인 남성의 투표를 허용할 것을 촉구했으며 다인종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해 남부에서 보다 적극적인 재건 노력을 요구했다.
더글러스는 "그렇다면 의회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부 사람들을 그들 자신으로부터 구하는 것"이라며 "흑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충성스러운 흑인과 남부의 충성스러운 백인을 통해 그곳에 국가적 정당을 구축하고 때가 되면 남북 간의 격차를 메워 우리나라가 공동의 자유와 공동의 문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썼다.
노예의 삶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일을 알지 못했던 더글러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지기 전 어머니가 그를 "나의 작은 발렌타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발렌타인데이를 생일로 기념했다.
도널즈 의원은 더글러스가 "이 나라에 대해 진실을 말할 만큼 이 나라를 사랑한" 능력을 칭찬했다.
도널즈 의원은 "노예 농장에서 세계 무대로 이어진 그의 생애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내의 서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