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자동 시동정지 장치를 탑재한 차량에 부여하던 크레딧을 폐지한다고 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리 젤딘 EPA 국장은 이날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자리에서 자동 시동정지 기술을 "오바마 스위치"라고 부르며 "모든 신호등과 정지 표지판에서 차량을 '죽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개선된 에어컨 시스템 등의 옵션에도 적용됐던 이 크레딧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젤딘 국장은 주로 도심 주행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진 시동정지 시스템이 차량에 해롭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환경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차량 배터리만 죽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전문가들에 의해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자동 시동정지 장치는 운전자가 완전히 정차했을 때 엔진을 자동으로 끄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면 다시 시동을 거는 기술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에 대응해 개발된 이 기능은 공회전과 연료 소비,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에 따르면 현재 차량의 약 3분의 2가 이 장치를 탑재하고 있으며, 운전자들에게 7~26%의 연비 절감 효과를 제공한다. 다만 이 시스템은 가속 시 찰나의 지연을 일으켜 일부 소비자와 자동차 애호가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EPA에 따르면 교통수단용 휘발유와 경유 연소는 이산화탄소, 메탄 등 지구온난화 가스의 주요 배출원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 시스템을 장착함으로써 연방 배출가스 감축 규정을 충족하기 위한 크레딧을 받을 수 있었다.
젤딘 국장은 지난 화요일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수많은 미국인이 자동차의 시동정지 기능을 열렬히 싫어한다"며 이번 발표를 예고했다. 그는 "정말 많은 이들이 이 터무니없는 시동-정지-시동-정지-시동-정지 개념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젤딘 국장이 지난해 이 기능을 "고치겠다"고 약속한 것을 이행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엑스에 올린 글에서 "자동차 회사들이 기후 참여 트로피를 받기 위해 모든 신호등에서 차가 죽는 기능"이라며 "EPA가 승인했고 모두가 싫어하니 우리가 고치겠다"고 썼다.
한편 이날 젤딘 국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온실가스 배출 규제의 핵심 근거였던 '위해성 판정(endangerment finding)'으로 알려진 과학적 결론의 폐기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친환경 차량 노력 약화 행보와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 신차 판매의 절반을 전기차로 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를 철회했다. 신규 및 중고 전기차 구매에 대한 연방 세금 공제를 종료하는 의회 세출법안에도 서명했다.
행정부는 또한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의 핵심 기후 규제를 약화시키면서 신차의 평균 연비 기준도 완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프 제조사 스텔란티스는 성명에서 "연비 기준에 대한 합리적이고 달성 가능한 접근법을 지지한다"며 "고객의 선택의 자유를 보존하는 규제 완화 노력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포드자동차는 "현행 배출 기준과 고객 선택 간의 불균형을 해결하려는 트럼프 대통령과 젤딘 국장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자동차 업계 단체인 자동차혁신연합(Alliance for Automotive Innovation)에 논평을 일임했다.
존 보젤라 연합 회장은 "이전 행정부에서 확정된 자동차 배출 규제는 현재 전기차 시장 수요를 고려할 때 자동차 제조사들이 달성하기 극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은 소비자를 위한 차량 선택권 보존, 산업 경쟁력 유지, 배출가스 감축과 청정 차량의 장기적 경로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