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공세, 중국의 강압적 경제 정책,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위협에 맞서기 위한 대응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벨기에의 한 고성에 모였다.
EU 정상들은 5일(현지시간) 벨기에 빌젠-호셀트의 16세기 알덴 비센 성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경제 경쟁력 강화와 경제 안보 확보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번 회의는 오는 3월 말 정상회담을 위한 제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자리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회의 직전 기자들에게 "우리 기업들을 불공정 경쟁과 경제적 강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인 통상 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에너지 비용 절감과 무역 장벽 완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EU 내부에서는 대응 방향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규제 완화,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 남미 메르코수르 국가들과의 무역협정 체결 등을 주장하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전날 "모든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EU 회원국들이 방산 장비를 구매할 때 유럽 기업 제품만 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메르츠 총리와 멜로니 총리는 역내외 기업 모두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몽드, 파이낸셜타임스 등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며 "중국과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정기술, 화학, 철강, 자동차, 방산 등 핵심 분야에 "유럽 우선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크롭 대통령은 "전략적 분야에서 일정한 유럽 우선주의가 없다면 유럽인들은 뒤처질 것"이라며 "우리는 더 이상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불공정한 경쟁자들과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EU 정상들은 또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관세 공세와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 제한으로 요동치는 글로벌 무역 체제에서 EU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 수단도 논의할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EU가 공동 채권을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재차 제기했다. 그는 이를 "미래를 위한 유로본드"라고 표현하며 "달러 헤게모니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메르츠 총리와 멜로니 총리는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제시한 경기부양 전략을 따르고 있다. 이 계획에는 규제 완화, 인프라 투자, 더 많은 국가와의 무역 관계 구축 등이 포함된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번 회의에서 정상들을 대상으로 연설할 예정이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자금과 자본이 이동하는 것을 막는 장벽이 너무 많고, 단순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너무 많다"며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날 정상들에게 EU 관료주의를 줄이고 단일 시장을 강화하며 "공유된 규칙과 공정한 조건에 기반한 야심찬 통상 정책을 보장"할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은 전날 연설에서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의 힘은 경제 전선에서의 우리 강점에 크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EU 공식 여론조사인 유로바로미터에 따르면 EU 전역의 시민들은 군사 위협, 경제적 압박, 기후 불안정 속에서 더 강력한 EU와 더 통합되고 강력하며 야심찬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베르토 알레마노 파리 HEC 경영대학원 EU법 교수는 "유럽 시민들의 더 많은 유럽적 행동에 대한 요구를 유럽 지도자들과 각국 정치 지도자들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더 나은 시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벨기에 바르트 드 베버 총리는 전날 일부 유럽 정상들과의 회의에서 "우리 모두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어느 방향인지도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배의 갑판에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지만 키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