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유럽 동맹국들은 우려를 일축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5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국방장관 회의에 불참했다. 지난해 12월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나토 외무장관 회의를 불참한 데 이은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 인사가 나토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북대서양이사회(NAC)의 장관급 회의를 빠지는 일은 드물다. 연속 두 번 불참은 더욱 이례적이다. 헤그세스 장관 대신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차관이 파견됐다.

아이슬란드 외무장관 토르게르뒤르 카트린 군나르스도티르는 기자들에게 "안타깝게도 그는 좋은 파티를 놓쳤다"며 "물론 장관들이 참석하는 것이 항상 더 낫지만 나쁜 신호로 묘사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실망하지 않았다"며 "우리 모두 빡빡한 일정이 있다. 미국 국방장관이 어떤 때는 오고 어떤 때는 안 오는 것이니 그의 결정이고 그가 수행해야 할 임무"라고 말했다.

나토 창설 당시 영국의 헤이스팅스 이스메이 초대 사무총장은 나토의 목적에 대해 "미국인들을 유럽에 묶어두고, 러시아인들을 밖에 두고, 독일인들을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독일이 나서고 있다. 러시아가 4년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독일은 향후 군대 현대화에 1000억유로(118조원)를 쓰기로 약속했다.

마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의 큰 임무 중 하나는 미국을 나토에 붙들어두는 것이다.

뤼터 사무총장은 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미국은 전 세계를 돌봐야 한다"며 "나는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항상 유럽과 캐나다가 나토 영토 방어에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일관되게 요구해왔다"며 "물론 미국과 함께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유럽이 재래식 무기와 방어에 더 많이 지출하고 미국이 나토의 핵 억지력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의구심은 남아 있다. 네덜란드 국방장관 루벤 브레켈만스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토 사무총장과 미국 사이에 합의된 '노 서프라이즈(깜짝 발표 금지)' 정책"이라고 말했다.

1년 전 헤그세스 장관은 미국의 안보 우선순위가 다른 곳에 있으며 유럽이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보냈던 미국의 총과 돈은 트럼프 정부 들어 끊겼다. 이제 유럽 동맹국과 캐나다가 미국에서 무기를 사서 우크라이나에 기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국들은 5일 나토에서 회의를 열어 더 많은 군사 지원을 논의했다. 바이든 정부 하 펜타곤이 자랑스럽게 주도했던 우크라이나 방위 연락그룹은 이제 영국과 독일이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존 힐리 영국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에 긴급 방공 지원금으로 5억파운드(8820억원)를 추가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영국이 세계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나토 내 유럽 안보를 위한 새로운 협정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도 더 많은 미국 무기 구매를 위한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전투기 조종사들이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비행 시뮬레이터를 더 보낼 예정이다.

이날 회의의 유일한 '성과물'은 나토가 '북극 센티넬(Arctic Sentry)' 작전을 출범한다는 발표였다. 이는 미국의 북극 안보 우려에 대한 대응이자 트럼프가 그린란드 강탈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려는 시도다.

표면적으로는 북극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활동이나 영향력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북극 센티넬은 본질적으로 재브랜딩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운영하는 것 같은 이미 진행 중인 지역 훈련들이 나토 산하로 들어와 나토 군사 수장의 감독을 받게 된다. 이는 장기적인 나토 작전이나 임무가 아니다.

덴마크, 프랑스, 독일이 북극 센티넬 하의 '군사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지만 어떤 방식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핀란드와 스웨덴도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벨기에는 자국의 역할을 검토 중이다.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불분명하다.

나토 주재 미국 대사 매튜 휘태커는 회의에 앞서 "미국만 더 많이 할 수는 없다"며 "우리의 집단 안보 모든 영역에 자산을 가져올 수 있는 준비되고 강한 동맹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의 반자치령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고 재차 위협하면서 동맹국들을 크게 동요시켰다. 나토의 주요 역할은 32개 회원국의 영토를 방어하는 것이지 훼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 동맹국과 캐나다는 북극 센티넬과 트럼프 행정부, 덴마크, 그린란드 간 진행 중인 협상이 나토가 이 분쟁에서 벗어나 유럽의 진짜 안보 우선순위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벨기에 국방장관 테오 프랑켄은 북극 안보 협정이 적어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음식 싸움을 멈추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그린란드 사태는 지난 76년간 나토의 최고 순간이 아니었다"며 "불필요한 위기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