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의 총체적 안전 불감증 실태가 드러나며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다.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상 보도를 통해 올해 초 발생한 알래스카 항공 737 맥스 기종의 '동체 구멍' 사고가 볼트 미장착에 따른 명백한 제조 결함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과거 3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두 차례의 추락 참사 이후에도 보잉의 안전 관리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조사 결과, 지난 1월 1만6000피트 상공에서 비행 중 동체 일부가 뜯겨나간 알래스카 항공기 사고는 출고 당시 문 부품을 고정하는 볼트 4개가 누락됐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NTSB는 보잉 공장을 떠날 때부터 볼트가 제대로 장착되지 않았다는 사진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제조상 결함은 보잉의 구조적인 생산 관리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FT에 따르면 보잉 공장에서는 특정 공정에서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도 항공기를 다음 공정으로 넘기는 '이동 작업'이 만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급업체인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스에서 납품한 동체 결함을 뒤늦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문 부품을 뜯어냈다가, 재조립 시 볼트를 장착하지 않는 치명적 실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작업 과정이 문서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NTSB는 볼트 재장착 같은 핵심 안전 절차에 대한 서류가 누락되는 등 문서화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안전보다 생산 속도를 우선하는 보잉의 기업 문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잉의 안전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8년과 2019년,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와 에티오피아 항공의 737 맥스 기종이 연이어 추락해 탑승자 346명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사고 원인은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설계 결함이었다.

조사 결과 보잉은 비용 절감을 위해 MCAS의 존재와 작동 방식을 규제 당국과 조종사들에게 의도적으로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미 의회 청문회에서는 보잉 내부 시험 조종사들이 MCAS 소프트웨어가 미친 듯이 작동한다며 "나도 모르게 규제 당국에 거짓말을 했다"고 말한 이메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잇단 참사 이후 보잉은 경영진을 교체하고 안전 시스템 강화를 약속했지만, 현장에서는 변화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고발자 에드 피어슨은 FT에 "2018년 추락 사고 전부터 공장 내 혼란과 결함 급증을 경고했지만 묵살당했다"며 "고객에게 항공기를 최대한 빨리 인도해야 한다는 극심한 압박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보잉은 두 차례 추락 사고 이후 미 법무부와 기소유예 합의를 맺었으나, 알래스카 항공 사고로 이 합의를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규제 당국과 항공사, 대중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FT는 보잉이 최근 210억달러(약 30조2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급한 불을 끄고 경영 정상화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잉이 하룻밤 사이에 이 지경이 되지 않은 것처럼, 회복 또한 하룻밤 사이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