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의 미술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의 다펀 마을이 생존의 기로에 섰다. 명화 복제품 수요 감소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부상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과거의 명성을 뒤로하고 창작 예술과 관광 중심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선전 외곽의 작은 마을인 다펀은 1989년 홍콩 사업가가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해 복제 유화 스튜디오를 세우면서 형성됐다. 2000년대 중반에는 전 세계 신규 유화의 60%를 생산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2018년 기준 다펀의 미술품 복제 산업 규모는 45억위안(약 8550억원)에 달했으며, 화가와 액자 제작자 등 약 8000명이 종사했다. 이들은 빈센트 반 고흐, 앤디 워홀 등의 작품 복제품을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판매했다.

그러나 최근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복제품 수요가 급감했다. 중국 내에서도 '모조품 생산 대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는 움직임과 함께 소비자 취향이 변하며 다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에 다펀은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선전시 정부는 2007년 다펀 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다펀을 문화 중심지로 바꾸기 위한 투자를 단행했다. 최근에는 화실과 갤러리 자리에 관광객을 위한 카페와 호스텔이 들어서고 있다.

화가들 역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20년 경력의 화가 추쥔빈(49)씨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미술 체험' 공방을 운영하며 수입의 약 30%를 충당한다. 그는 FT에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항상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상거래로 활로를 뚫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1년 중국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다펀 내 업체들이 운영하는 디지털 상점은 약 2500개로, 마을 연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창작 예술로의 전환은 순탄치 않다. 다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상업 미술'이라는 편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다펀에서 활동해온 양화시(55)씨는 "다펀에서는 훌륭한 작품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며 "사람들은 이곳을 전문 예술이 아닌 상업화된 상품을 파는 곳으로 여긴다"고 토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위니 웡 미술사학자는 "다펀 출신 예술가들이 주류 미술계에 진입하려는 시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며 "결국 복제품을 그리는 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AI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화가 추씨는 AI를 아이디어 구상과 작품 구성에 도움을 주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AI가 다펀의 화가들을 대체하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 가지 길이 막히면 우리는 또 다른 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