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수십 년간 이어진 기업의 분기별 실적 공시 의무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월가 생태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EC는 기업들에 분기 보고 대신 반기 보고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안을 준비 중이다. 이 논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실적 발표 횟수를 줄이는 것이 기업에 도움이 될지 검토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본격화됐다.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은 분기별 실적 발표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중하게 만든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2019년 나스닥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분의 3이 반기 보고 전환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 기업들은 실적 발표 준비에 분기당 평균 853시간과 약 33만5000달러(약 4억8200만원)를 지출한다고 답했다. 일부 기업은 분기별 비용이 최대 700만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도 변경이 기업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자관계전문가협회(NIRI)의 매튜 브러쉬 CEO는 "투자자들은 결코 더 적은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며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분기 보고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2018년 CFA 협회 조사에서 투자자의 82%는 분기 보고 의무가 완화되면 정보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답했다.

제도가 바뀌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은 외부 전문가들이 될 수 있다. 기업 거버넌스 협회는 2019년 SE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분기 보고 비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으로 변호사 및 회계사 관련 비용을 꼽았다.

반면 대체 데이터 제공 업체들은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식적인 기업 보고서가 줄면 실시간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체 데이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실적 발표 자체가 줄어 헤지펀드의 거래 기회가 감소하는 것은 이들에게도 악재가 될 수 있다.

헤지펀드 업계 출신인 마크 그린버그는 "실적 발표 시즌은 헤지펀드가 돈을 벌기 가장 좋은 시기"라며 제도 변경이 헤지펀드에 가장 즉각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