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WB)이 30여년간 고수해 온 산업정책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과거의 평가가 오류였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이날 발표한 새 보고서를 통해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개입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정부 개입을 '비용이 큰 실패'로 규정했던 1993년 보고서의 결론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인더밋 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과거의 결론이 산업정책에 대한 '낙인'을 찍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세계은행은 정부가 무역 장벽 없이 시장이 작동하도록 맡겨두고, 교육과 핵심 인프라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길 이코노미스트는 "그 조언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오늘날 플로피디스크와 같은 실용적 가치를 지닌다"고 지적하며 과거의 입장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보고서는 특히 1970년대 한국 정부의 중화학공업 '빅 푸시' 정책을 성공 사례로 재평가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정책이 실패가 아니었으며, 이로 인해 한국 경제가 매년 3% 더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은 "정부가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경제 생산물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책 도구인 산업정책이 본격적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국의 기록적인 성장과 함께 미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도 산업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은행 고객 정부의 80%가 효과적인 산업정책 사용법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소득 5000달러에서 1만4000달러 사이 국가들의 기업 보조금 총액은 국내총생산(GDP)의 4.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세계은행은 산업정책이 성장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길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개발도상국 정부가 산업정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단지나 기술 개발 프로그램 같은 '메스' 대신 전면적인 관세와 보조금이라는 '둔기'를 사용해 일을 망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산업정책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존재한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산업정책이 국가 간 분열을 초래하고 부패의 기회를 열며, 필요 이상으로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