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박에 따라 사실상 통과가 불가능한 투표법 개정안을 놓고 이례적인 '무기한 토론'에 돌입한다.

AP통신에 따르면 공화당은 17일(현지시간)부터 유권자 등록 시 미국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SAVE America Act)에 대한 장기 토론을 시작한다.

이번 토론은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주도로 진행되며,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다. 이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해당 법안 처리를 강력히 요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조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부정행위를 통해서만 중간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근거 없이 주장하며, 공화당의 승리를 위해 이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압박해왔다. 그는 이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다른 법안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유권자 등록 시 시민권 증명 서류 제출, 투표소에서 신분증 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시민권 증명 없이 유권자를 등록시키는 선거 관리 직원에 대한 처벌 조항도 신설한다.

하지만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안 처리에 필요한 60표에 크게 못 미치는 53석을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 45명과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 2명 전원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의 이번 조치는 법안 통과보다는 민주당의 반대 입장을 부각하려는 여론전 성격이 짙다. 튠 원내대표는 지난주 "민주당의 입장을 기록으로 남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은 비시민권자의 투표 사례가 거의 없다며, 이 법안이 수백만 명의 유권자에게 시민권 증명의 부담을 지워 참정권을 박탈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 법안은 유권자 명부를 대규모로 삭제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위해 상원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제도를 폐지하라고 요구했으나, 튠 원내대표는 의석수 부족을 이유로 거부했다. 대신 공화당이 직접 토론을 주도하며 법안 지지 여론을 결집하는 방식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