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주택 공급난에 시달리면서 서민들의 주거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저렴한 주택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집값 급등세가 임금 상승률을 크게 앞질렀다. 이 문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기업이 아닌 사람을 위한 집을 원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대형 기관 투자자들의 주택 매입을 금지하고, 주택담보대출 비용 절감을 위해 2000억달러(약 288조원)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 상원도 최근 기관 투자자의 주택 매입을 제한하고 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주택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정치권이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 경기는 싸늘하다. 대표적인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시는 주택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이 지역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주택 신규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024년 기준 베들레헴의 임대주택 공실률은 2%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 인구조사국의 전국 평균치인 7.2%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로 인해 가정 폭력이나 의료 비상사태 등으로 갑작스럽게 집을 잃는 '위기형 노숙'이 급증하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시내에는 최근 '고급'을 내세운 신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침실 1개짜리 월세가 2000달러(약 288만원)에 육박해 서민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비영리단체 관계자인 애나 스미스는 "이런 아파트들은 저렴한 주택 부족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배제됐다는 시각적 상징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건설은 더욱 어렵다. 베들레헴에서 추진 중인 저가주택 '게이트웨이 온 포스' 프로젝트는 한 채당 건설비가 50만달러(약 7억2000만원)에 달한다.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복잡한 행정 절차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 개발사가 부지를 매입해 기부하는 '유니콘' 같은 행운 덕에 겨우 시작될 수 있었다. 프로젝트 관계자는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사업 타산이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주택 가격과 대출 금리 탓에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젊은 층도 늘고 있다. 최근 이 지역으로 이주한 카일라 사이먼(34)씨는 "급여가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주택에 투자하는 것보다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현재의 6% 미만에서 3~5% 수준으로 떨어져야 주택 구매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