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한 억만장자에게 부과한 제재가 트위터 게시물 한 줄에서 시작됐으며, 정치적 압력 속에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입수한 정부 내부 이메일을 인용해 소련 출신 석유업계 거물 유진 슈비들러에 대한 제재가 이같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슈비들러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영국 정부를 제소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슈비들러가 탑승한 전용기가 영국에 착륙하자 한 10대 소년이 운영하는 '러시아 재벌 제트기' 트위터 계정이 이 사실을 알렸다. 이것이 영국 정부의 움직임을 촉발했다.
당시 교통부 장관이었던 그랜트 섑스는 이 트윗을 근거로 해당 전용기 운항을 중단시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외무부 등 실무진은 슈비들러가 영국 시민권자이며 러시아와 직접적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보였다.
한 외무부 관리는 이메일에서 섑스 장관의 압박을 언급하며 이를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무차별적 접근'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섑스 장관은 제재를 밀어붙였고, 외무부는 결국 슈비들러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영국 정부는 슈비들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긴밀한 관계'라는 점을 제재 근거로 삼았다. 슈비들러는 아브라모비치 소유였던 석유회사 시브네프티의 사장을 지냈고, 첼시FC 이사로도 활동했다.
슈비들러는 제재가 부당하다며 영국 최고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였으나 패소했다. 법원은 그의 자산권보다 전쟁을 끝내려는 정부의 외교 정책이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현재 유럽인권재판소에 항소한 상태다.
슈비들러 측은 자신이 러시아 국적을 가진 적이 없는 영국 시민이며, 전쟁을 두 차례나 비난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FT에 "제재 해제를 위해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영국이 도입한 제재 시스템의 불투명성과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은 현재 1800명 이상의 개인을 러시아 관련 제재 명단에 올렸지만, 명단에서 해제된 사례는 10명 미만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