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외교 공관들을 서방에 대한 대규모 도·감청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서방 정보 당국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을 인용해 빈이 러시아의 유럽 내 최대 비밀 신호정보(SIGINT) 수집 플랫폼이 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지만, 중립국인 오스트리아는 관대한 태도를 취한 결과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대사관 등 빈에 있는 여러 러시아 소유 건물 옥상에는 위성 안테나와 특수 장비들이 설치돼 있다. 이 장비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정부 및 군사 통신은 물론,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위성 통신까지 감청하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빈에 주재하는 한 유럽 고위 외교관은 FT에 "이곳에서의 러시아 활동은 우리의 주요 우려 사항 중 하나"라며 "빈은 러시아에 매우 중요해졌고, 유럽의 허브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새로운 안테나가 추가 설치됐으며, 안테나 방향이 자주 바뀌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 뮌헨안보회의(MSC) 기간에는 대형 안테나 중 하나가 회의 기간에만 방향을 바꿨다가 회의가 끝난 뒤 원위치하는 모습이 관측됐다. 이는 특정 목표를 겨냥한 적극적인 정보 수집 활동의 증거로 분석된다.

오픈소스 분석 그룹 '노멘네시오'(NomenNescio)는 지난 2년간 러시아 외교 공관 옥상을 촬영·분석해왔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안테나는 모스크바가 있는 동쪽이 아닌 서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유럽과 아프리카 간 통신을 담당하는 특정 위성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빈이 지정학적으로 최적의 위치라고 지적했다. 인근에 유럽의 주요 위성 통신 기지가 있고, 유엔(UN)·국제원자력기구(IAEA)·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국제기구 본부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정보기관(DSN) 역시 러시아의 신호정보 수집 활동이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법률상 자국에 대한 간첩 행위가 아니면 처벌이 어려워 정부는 외교관 추방 등 적극적인 조치에 소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빈에 약 500명의 외교 인력을 두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정보 당국은 이 중 3분의 1가량이 비밀리에 스파이로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직접적인 조치 대신 동맹국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상황을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