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예술가 크리스틴 선 킴이 아트 바젤 홍콩에서 소리와 소통의 본질을 탐구하는 신작을 선보인다.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크리스틴 선 킴은 아트 바젤 홍콩의 '인카운터스' 프로그램 일환으로 신작 '메아리 덫'(A String of Echo Traps)을 공개한다. 이 작품은 홍콩 퍼시픽 플레이스 쇼핑몰 아트리움에 설치된 4면 큐브에 투사되는 3차원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다.

작품은 소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복과 단절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자막, 문자 메시지, 수어 통역 등 매개된 소통 방식을 '메아리'로 간주한다. 이 메아리들이 때로는 소통을 가두는 '덫'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크리스틴 선 킴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메아리라는 단어는 소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청각장애인의 삶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품이 사회에 동일한 생각이 반복되는 '메아리 방' 현상을 비판하는 동시에, 억압과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청각장애인 커뮤니티 내부의 갇힌 상황도 반영한다고 밝혔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그는 현재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청각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수어(ASL), 악보, 인포그래픽 등을 활용한 독특한 그래픽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 '청각장애인의 분노 단계'(2018)는 회의에 통역사가 없는 상황 등 일상에서 겪는 분노의 수위를 기하학적 각도로 표현해 주목받았다.

초기에는 예술 교육을 받는 데 장벽을 겪었으나, 이후 뉴욕의 시각예술학교(SVA)와 바드 칼리지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받으며 소리의 정치학을 파고들었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도쿄 모리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전시됐으며 지난해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중견작가 회고전을 열었다.

크리스틴 선 킴은 "수어는 3차원 언어이며, 내 생각도 3차원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오해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덜 명확하더라도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싶다"며 작품 세계의 변화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