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주요 소셜미디어(SNS)에 이어 메신저 앱 텔레그램까지 압박하며 '디지털 철의 장막' 구축을 가속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폴리티코 등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연방보안국(FSB)의 요청 시 통신사업자가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은 지난 3일부터 발효됐다.

이 법안이 시행된 직후 모스크바에서는 며칠간 주요 통신사 전반에 걸쳐 모바일 인터넷과 통화, 문자 메시지 장애가 보고됐다. 국가두마(하원) 내부에서도 모바일 서비스와 와이파이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유튜브 등 대부분의 서방 SNS 접속을 차단하거나 제한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군사 작전의 핵심 소통 수단으로 쓰이는 텔레그램까지 속도를 저하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군의 한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모든 군사 업무와 소통이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진다"며 "텔레그램 차단은 러시아군 전체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지난 2월 러시아군이 사용하던 스타링크 단말기 접속을 차단하자 러시아군의 작전은 큰 혼란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스타링크 차단으로 우크라이나 내 트래픽이 약 75% 급감했다고 미국 네트워크 모니터링 회사 켄틱은 분석했다.

러시아 당국은 텔레그램이 개인정보 보호, 사기 방지에 실패하고 테러리스트에 의해 사용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러시아 매체 RBC는 당국이 오는 4월 초 텔레그램을 전면 차단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디지털 고립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핵무기를 보유한 거대한 북한'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알렉산더 가부예프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 국장은 러시아의 디지털 고립 심화가 중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는 서방 플랫폼의 대안으로 자체 개발한 메신저 앱 'MAX'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 MAX는 중국의 위챗처럼 자국 내 디지털 생태계의 중심축이 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됐으며, 정부 기관과 학교 등을 통해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과 군 내부에서는 MAX의 기술적 결함과 개인정보 유출 우려로 불신이 깊다. 한 시민은 "메시지가 지연되고 알림도 오지 않는다"며 "정부 통제 앱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인터넷 통제에 맞서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한 우회 접속 시도도 확산하고 있다. 디지털 권리 단체 인터넷보호협회의 미하일 클리마레프 국장은 "정부가 VPN을 찾아 차단하면 이용자들은 새로운 경로를 찾는 게릴라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친크렘린 성향의 세르게이 미로노프 '정의 러시아당' 대표는 텔레그램 제한 조치가 최전선 군인들을 약화시키는 행위라며 규제 당국을 '멍청이들'이라고 비난했다. 친러시아 성향 군사 블로거들도 텔레그램 차단이 군수품 조달을 위한 민간 모금 활동을 마비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