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금융당국이 역외 자금 유치를 위해 도입한 저세율 투자 기구가 자금세탁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지난 1월 말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대규모 자금세탁 사건이 잇따르면서 불법 자금 유입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 따른 조치다.

문제가 된 제도는 '변동자본회사(VCC)' 구조다. 2020년 아시아 금융 허브 자리를 놓고 홍콩과 경쟁하던 싱가포르가 조세회피처로 자금을 옮기는 투자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도입했다. 헤지펀드, 사모펀드, 패밀리 오피스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MAS에 따르면 현재까지 1400개 이상의 VCC와 3300개의 하위 펀드가 설립됐다. 싱가포르 내 허가된 자산운용사의 절반 이상이 VCC를 설정해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VCC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규모 금융 범죄가 연이어 발생했다. 2023년에는 중국 국적자 10명이 30억싱가포르달러(약 3조원) 규모의 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또한 지난해에는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 조직과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억달러 규모의 금융자산이 압수됐다. 이달 들어서는 현지 투자회사 '캐피털 아시아 인베스트먼트'가 국제 자금세탁망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으며 은행 계좌에서 1억6000만싱가포르달러(약 1600억원)가 동결됐다.

MAS는 브리핑에서 VCC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범죄자들이 싱가포르 안팎으로 자금을 은밀하게 이동시키는 데 악용하지 않도록 운용사들이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MAS가 실시한 검토에서도 일부 VCC는 실질적인 자금 운용 활동이 거의 없거나 적절한 수탁 계약을 맺지 않은 사례가 발견됐다.

다만 MAS는 FT에 해당 브리핑이 업계와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규제 기준에는 변화가 없으며 책임감 있는 VCC의 사용을 계속 환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