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정치적 불안 상황에 대비한 전국적인 인터넷 통제 시스템 시험을 강화하면서 수도 모스크바 등에서 모바일 인터넷 접속이 차단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모스크바 시민들은 모바일 인터넷 장애로 온라인 요금 납부, 메신저 앱 사용, 택시 호출, 온라인 지도 검색 등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안정적인 와이파이(Wi-Fi)를 찾아 카페로 몰리는 재택근무자들도 늘었다.
크렘린궁은 이번 인터넷 차단이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드론이 항법 장치로 현지 이동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전국적인 정보 통제 시스템을 시험하기 위한 구실로 보고 있다.
독일외교협회의 러시아 인터넷 전문가 알레나 에피파노바는 "러시아가 수년간 구축하려던 시스템"이라며 "우크라이나 드론 위협은 이를 전국적으로 시험할 완벽한 기회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드론 위협이 없는 지역에서도 차단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시험 중인 시스템은 이란의 통제 모델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반정부 시위 당시 인터넷을 차단하면서도 정부 관계자 등 소수만 접속할 수 있는 '화이트리스트' 방식의 병렬 인터넷망을 가동한 바 있다. 러시아 역시 정부 포털, 국영 언론 등 승인된 사이트만 접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이 과정에서 텔레그램, 왓츠앱 등 기존 메신저 앱 사용은 제한되고 있으며, 정부 기관과 학교에는 암호화 기능이 없어 감시가 용이한 정부 통제 앱 '맥스'(Max) 사용이 강요되고 있다.
인터넷 차단은 모스크바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약 7200km 떨어진 캄차카반도를 포함해 러시아 11개 시간대에 걸친 수십 개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약국 전산망이 마비돼 영업을 중단하거나, 당뇨병 어린이의 혈당 수치 전송이 끊기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러시아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최근 5일간의 인터넷 장애로 모스크바 기업들이 입은 손실이 50억루블(약 765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결제 단말기 작동이 멈춰 현금만 받는 상점이 늘고, 종이 지도를 구매하는 사람도 다시 나타났다. 한 온라인 소매업체의 무전기 판매량은 지난 한 달간 73% 급증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최근 모스크바 인터넷 차단에 대해 "안보 확보가 최우선"이라고만 밝히며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난 2월 러시아 의회는 연방보안국(FSB)의 요청 시 통신사가 의무적으로 데이터 접속을 차단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향후 인터넷 통제는 더 잦아질 전망이다.
이러한 통제 강화에 맞서 시민들은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우회 접속을 시도하고 있다. 정부는 VPN 광고를 불법화하고 앱스토어에서 삭제하도록 압박하고 있지만, 당국과 이용자 간의 숨바꼭질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인터넷 전문가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러시아 당국이 대규모 저항을 피하면서 점진적으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사회적 행동을 바꾸고 정부에 비판적인 정보 확산을 막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