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대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린 고율 관세를 되살리기 위해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 조사에 착수하자, 한국 등 주요 교역국들이 기존 합의를 준수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주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과도한 무역 흑자, 산업 생산 능력 과잉 등을 '불공정 관행'으로 지목했으며, 유럽연합(EU), 멕시코, 중국, 일본, 한국, 인도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비상사태 관련 법률을 이용해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권한을 이용해 150일 시한의 10% 글로벌 관세를 임시로 부과한 뒤, 이번에 무역법 301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에 대해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의 주된 관심은 대법원 판결 이전 수준으로 관세를 되돌리는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 여러 품목에 15% 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했으며, 최근 국회는 합의의 일환인 3500억달러(약 50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법안을 승인했다.
EU 역시 지난해 대부분의 상품에 대한 미국 관세를 15%로 제한하는 데 합의했다며 미국이 약속을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라프 길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미 행정부가 기존 약속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어떤 징후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일본과 대만도 15% 관세율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어 대표는 미국이 기존 무역 합의를 존중할 것이라며 연속성을 찾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무역법 301조는 통상 1년 이상 걸리는 공식 조사를 요구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7월까지 조사를 마무리하길 희망하고 있어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각국은 미국의 조사 명분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길 대변인은 "EU는 시장 중심 경제"라며 "구조적 과잉 생산의 원인이 아니라 글로벌 왜곡을 해결하는 파트너"라고 반박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USTR이 2024년 싱가포르가 270억달러(약 38조8800억원)의 대미 무역 흑자를 냈다고 지적했지만, 공식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미국이 흑자를 기록했다고 정정했다.
중국은 가장 강경하게 반대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교역 상대국의 생산 능력 과잉 여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중국의 무역 흑자는 1조2000억달러(약 1728조원)에 달했다.
다만 전직 미국 무역 협상가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중국이 조사가 끝나고 새로운 관세가 공식 발표될 때까지는 즉각적인 보복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문제는 오는 일요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 간의 회담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