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난이 전 세계 식량 공급망을 위협하고 있다. 농업용 기계 가동에 필수적인 경유(디젤) 부족 사태가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식량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2주째 이어지면서 중동 지역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비료의 흐름이 막혔다.

현대 농업은 파종, 수확, 가축 관리에 사용되는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 막대한 양의 연료를 필요로 하는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다. 경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파종이 지연되거나 규모가 축소될 수 있으며, 다 자란 작물을 제때 수확하지 못해 품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수확 후 가공 및 운송 비용 상승도 불가피하다.

시드니 라보뱅크의 폴 줄스 농업 원자재 분석가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투입 비용 측면에서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중동발 원자재 의존도가 특히 높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일부 쌀 농가들이 관개 펌프를 가동할 경유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1인당 하루 공급량을 2리터로 제한하면서, 하루 최소 3리터가 필요한 농민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경유 가격 급등으로 쌀 수확기 임대료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어민들 역시 경유 가격 상승으로 하루 약 500페소(약 1만2000원)의 손실을 보고 있어 조업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호주에서는 겨울 곡물 파종을 앞두고 농가들이 연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 경작지는 파종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호주 최대 곡물 생산 및 수출 지역인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의 일부 연료 공급업체들은 농가 주문량보다 적은 양을 배송하고 있다.

유럽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독일 농민들은 경유 100리터당 30유로(약 4만7500원)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루마니아의 농업용 경유 가격은 전쟁 시작 이후 약 25% 급등했다.

영국의 농부 리처드 헤디는 "봄 중반이 되면 비축해둔 경유가 소진될 것"이라며 "가격을 떠나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작물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병충해로부터 보호할 연료가 없다면 작황이 실패해 큰 적자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호주의 농업 단체 그레인 그로워스의 리스 터튼 의장은 "2~4주 안에 공급망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파종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