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100달러 선까지 치솟았지만, 미국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보이며 투자자들이 유가 상승세의 한계를 예상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약 2주간 국제 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40%가량 급등해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이 사실상 중단된 영향이다. 반면 같은 기간 엑손모빌, 셰브론 등 주요 에너지 기업을 포함하는 S&P500 에너지 부문 지수는 약 3% 상승에 그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두 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째는 투자자들이 현재의 유가 급등을 단기적인 현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잭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브라이언 멀버리 수석 시장 전략가는 "시장은 이번 사태를 단기적 문제로 보고 상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데 돈을 걸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브렌트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70달러 미만이었다. RBC 캐피털 마켓의 스콧 해놀드 애널리스트는 "유가가 배럴당 85달러를 빠르게 넘어서면 시장은 유가 상승분만큼 주가에 반영하지 않는다"며 "장기적으로 유가가 100달러 이상을 지속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요인은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업 차질이다. 엑손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 중동에 사업장을 둔 일부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전쟁으로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유전 서비스 회사 SLB는 전쟁으로 일부 사업을 중단한 후 1분기 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멜리우스 리서치의 제임스 웨스트 상무이사는 "아직 부정적인 소식이 주가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이번 분기에는 모든 기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분쟁 수준이 석유 산업에 '미지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에너지 기업들은 고유가로 인한 현금 흐름 증가 등 일부 혜택을 볼 수도 있다. 토터스 캐피털의 롭 서멀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는 많은 기업에 더 높은 현금 흐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이 일부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으며,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이달 말까지 미 해군이 유조선 호위를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씨티그룹의 스피로 두니스 애널리스트는 "갈등이 끝나 유가가 하락하더라도, 주가에 상승분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에너지 부문의 광범위한 매도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