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성인 흡연자의 금연을 돕기 위해 커피, 민트 등 일부 가향 전자담배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지침 초안을 공개해 공중 보건 전문가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의학 전문매체 스탯(STAT)에 따르면 FDA는 최근 이같은 내용의 전자담배 제조업체용 지침 초안을 발표하고 향후 60일간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현재 미국에서는 담배향과 멘톨향 전자담배만 공식 판매가 허용된다. 이번 지침은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은 과일, 사탕, 디저트향은 계속 금지하되 성인 흡연자들이 선호할 만한 특정 향은 허용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정책 변화가 청소년 흡연율을 다시 높이고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벤 요르트 듀크대 의대 교수는 "특히 계피(시나몬)와 정향(클로브)은 전자담배에서 확인된 가장 독성이 강한 향료 화학물질에 속한다"며 "FDA가 향신료 계열의 향을 승인하려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계피향 전자담배 액상은 플라스틱을 녹일 정도의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폐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예일대 의대의 수치트라 크리슈난-사린 교수 역시 흡입 시 독성 물질로 작용할 수 있는 계피향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역사가 반복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청소년들을 다시 전자담배로 유인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담배 없는 아이들을 위한 캠페인'의 데니스 헤니건 부회장은 "FDA가 담배 및 베이핑 산업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FDA가 가향 제품을 더 많이 승인할 방법을 찾으려는 추세"라고 비판했다. 2024년 미국 청소년 담배 사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민트향은 과일향(63%), 사탕향(33%)에 이어 청소년들이 세 번째로 선호하는 맛이었다.

FDA는 새로운 향을 승인받으려는 제조업체가 해당 제품이 성인 흡연자의 전자담배 전환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며, 그로 인한 이익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추가적인 위험을 능가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벤저민 채피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 교수는 "FDA가 높은 수준의 증거를 요구한다면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국증기제조업체협회의 짐 매카시 대변인은 "제조업체들이 수백만 달러를 들여 종단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지침을 "신뢰할 수 없는 이중 화법"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레이놀즈 아메리칸의 루이스 핀토 대변인은 "성인 흡연자에게 담배와 멘톨 외에 매력적인 향을 제공해야 한다"며 지침이 더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자담배의 대부분은 불법 제품이며, 공식 승인을 받은 제품은 39개에 불과하다. 불법 제품 단속 강화 등으로 미국 청소년의 전자담배 사용률은 2019년 20%에서 2024년 6%로 크게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 완화가 자칫 청소년 흡연율 감소 추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