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원조 자금 축소로 아프리카의 보건 비영리단체(NGO)들이 존폐 위기에 내몰리면서 성폭력 생존자와 에이즈(HIV) 환자 등 취약계층이 의료 공백 사태에 직면했다.

1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활동하는 보건 NGO들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 중단과 유럽 기부금 감소가 연쇄적으로 맞물리면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남아공에서 30년간 여성 인권 단체 '마시마냐네'를 운영해온 레슬리 앤 포스터 대표는 USAID의 지원 중단으로 하룻밤 새 예산의 30%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며 이 여파로 독일과 네덜란드도 지원을 중단했고 결국 전체 예산이 3분의 1가량 줄었다고 설명했다.

재정난은 즉각적인 서비스 축소로 이어졌다. 마시마냐네는 사회복지사 등 직원 수십명을 해고해야 했고, 14곳에 달했던 보호시설과 사무소는 5곳으로 줄었다. 지난 연말에는 인력 부족으로 약 300명의 성폭력 생존자를 돌려보내야만 했다.

정부 원조뿐만 아니라 민간 기부도 급감하는 추세다. 블룸버그가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아프리카 보건 분야에 대한 민간 자선단체의 기부금은 1년 전 35억달러 이상에서 최근 약 30억달러로 15% 감소했다. 특히 HIV·에이즈 관련 사업 자금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안젤라 아페아기에 워싱턴대 IHME 조교수는 "2000년대 초반 보건 기금의 황금기가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남아공 보건부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의 HIV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 지원금 4억4000만달러가 삭감되면서 현지 단체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자금줄이 마르면서 단체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주류·담배·설탕 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죄악세' 도입을 지지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르완다, 에티오피아 등 일부 국가는 이미 관련 조치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부채 문제로 재정 여력이 없는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약사 머크의 하랄트 누서 팀장은 "30개 이상의 아프리카 국가가 보건 예산보다 대외 부채 상환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며 "어떤 형태로든 외부 부채 탕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UAE)의 모하메드 빈 자예드 재단이 아프리카 모자 사망률 감소를 위해 5년간 6억달러 지원을 약속하고 중국이 남아공 HIV 예방 사업에 350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새로운 자금원이 등장하고 있다. 마시마냐네 역시 현지 기업과 전문가들을 상대로 모금 운동을 벌여 현지 조달 예산 비중을 1년 전 5%에서 15%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NGO 운영 병원의 폐쇄로 인한 의료 공백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케이프타운의 한 성전환자 성노동자는 의지하던 NGO 병원이 문을 닫아 공공 병원으로 갔지만 극심한 차별을 겪었다며 "지난해부터 모든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