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이 항공우주 기술과 공장식 대량생산 기법을 동원해 10년 내 주택 2600만호를 공급하려던 야심 찬 국가 프로젝트가 정치적 반대와 비용 문제에 부딪혀 좌초된 사실이 재조명받고 있다.

1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오퍼레이션 브레이크스루'(Operation Breakthrough)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1969년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가 주도한 역사상 가장 야심 찬 연방 주택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HUD 국장이던 조지 롬니와 미 항공우주국(NASA) 원자력 로켓 추진 전문가 출신인 해럴드 핑거가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들은 달 탐사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국가적 역량을 주택 문제 해결에 쏟아붓고자 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주택 건설 산업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 수요 급증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파편화된 구조와 각기 다른 건축 규제로 대량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보잉, 제너럴일렉트릭(GE), US스틸 등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체까지 참여시켜 공장에서 주택 모듈을 생산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공업화 건축 방식을 도입하려 했다. HUD는 400개 이상의 기술 제안을 받아 22개를 프로토타입으로 선정하고 전국 9곳에 시범 단지를 건설했다.

오퍼레이션 브레이크스루는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 인종 통합이라는 진보적 사회 목표를 동시에 추구했다. 1968년 공정주택법이 통과된 직후 취임한 롬니 국장은 주택난과 인종 차별이 도시 불안의 근원이라고 진단했다.

리처드 밴 더스텐 당시 HUD 차관은 "주택 과밀을 줄이면 도시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며 "도심과 교외에 매력적인 주택을 공급해 부유층의 이탈을 막고 인종적으로 균형 잡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부 시범 단지는 인종과 소득 수준이 다양한 공동체로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공화당 내에서는 '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닉슨 행정부는 연방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려 해 비협조적이었다. 노동계는 일자리 감소를 우려해 반발했으며 지역사회에서는 님비(NIMBY) 현상이 나타났다.

결국 프로젝트는 예산이 대폭 삭감된 끝에 1976년경 사실상 폐기됐다. 당초 목표했던 2600만호에 한참 못 미치는 약 3000가구의 주택을 짓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프로젝트의 실패가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경제적 구조에 기인했다고 분석한다. 알렉산더 아이젠슈미트 일리노이대 건축과 교수는 블룸버그에 "의회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기존 주택 시장의 기득권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비록 미국 내에서는 실패했지만 이 프로젝트의 혁신은 해외로 전파됐다. 당시 미국을 방문해 기술을 연구한 일본은 현재 전체 건설의 15%를 공업화 방식으로 진행하며 스웨덴은 그 비율이 45%에 달한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3% 수준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