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성범죄자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루된 인사를 주미대사로 임명하며 내부 경고를 무시한 사실이 드러나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공개한 약 150쪽 분량의 문서는 스타머 총리가 피터 맨델슨 전 장관을 주미대사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그의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정부에 '평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실무진의 명백한 경고를 묵살했음을 보여준다.

해당 문서는 맨델슨의 신원조사 체크리스트에 그의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굵은 글씨로 '위험 신호'로 강조됐다고 명시했다. 또한 과거 두 차례의 금융 문제로 장관직에서 사임했던 이력과 로비 회사 설립 등 다른 평판 문제도 지적됐다.

당시 사이먼 케이스 내각 비서관은 스타머 총리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인물(맨델슨)이 당신과 개인적으로 더 연결되어 있어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며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임명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스타머 총리는 맨델슨이 엡스타인의 2008년 미성년자 성범죄 유죄 판결 이후에도 그와 접촉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지난해 9월 그를 해임했다. 스타머 총리는 맨델슨이 자신을 속였다고 주장하며 "실수를 한 것은 나이며, 엡스타인의 희생자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스타머 총리가 속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포함되지 않았다. 맨델슨을 수사 중인 경찰이 수사 무결성을 위해 총리와 맨델슨 사이의 서신 공개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맨델슨은 15년 전 엡스타인에게 민감한 정부 정보를 넘긴 혐의로 지난달 잠시 체포됐으나, 혐의를 부인했으며 기소되지는 않았다. 그는 성적 비위 혐의는 받지 않고 있다.

야당인 보수당의 케미 바데노크 대표는 스타머 총리가 맨델슨 임명에 대해 의회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하며 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스타머 총리가 맨델슨 임명에 대해 거짓말을 반복했다는 것이 매우 분명하다"며 "이것은 그의 판단력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스타머 총리의 입지가 불안정하지만, 현재 중동 문제에 대한 신중한 외교적 대처가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어 당장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팀 베일 런던 퀸메리대 정치학 교수는 "맨델슨 관련 사건은 분명히 파괴적이지만, 국가가 더 중요한 중동 문제에 몰두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보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