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대 미국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수많은 원주민이 희생된 '눈물의 길'이 원주민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유했던 흑인 노예들의 고통까지 서린 이중 비극의 현장이었음이 재조명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여행 전문 매체 아틀라스 옵스큐라에 따르면 미국 남동부 9개 주에 걸쳐 5000마일(약 8000km) 이상 뻗어있는 '눈물의 길 국립역사탐방로'는 19세기 미국사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장소다.
이 길은 1830년 앤드루 잭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발효한 '인디언 이주법'에 따라 시작됐다. 체로키, 촉토, 치카소, 크리크, 세미놀 등 5개 원주민 부족이 조상 대대로 살던 터전에서 현재의 오클라호마주인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추위와 질병,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어 체로키 언어로 '그들이 운 길'(Nunna daul Tsuny)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이 비극적 행렬에는 원주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 뒤늦게 알려지고 있다. 당시 5개 부족의 일부 부유층은 백인 농장주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고, 강제 이주가 시작되자 이들 노예도 함께 끌고 갔다. 수천 명의 흑인 노예들은 이주 과정에서 요리, 간호, 각종 노역에 동원됐으나 비극의 생존자가 아닌 '재산'으로 취급됐다.
매체는 "미국 역사의 가장 깊은 두 가지 불의, 즉 원주민에 대한 부당한 처사와 흑인 노예제도가 고통스럽게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뛰어난 법적·정치적 기술로 강제 이주에 맞서 싸웠지만, 그들 중 다수가 동시에 노예 소유주였다는 복잡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현재 '눈물의 길' 전 구간이 대중에게 개방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보존된 구간에서는 역사의 흔적을 직접 걸으며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아칸소주 북서부의 프레리 그로브는 1838년에서 1839년 겨울 체로키족이 이동했던 '벤지 루트'의 일부로, 당시의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이외에도 켄터키주의 맨틀 록은 체로키족이 오하이오강 도하를 앞두고 혹한 속에서 며칠씩 대기해야 했던 장소이며, 아칸소주 포트스미스 국립사적지는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관련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알고자 한다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체로키 인디언 박물관'이나 '눈물의 길' 종착지인 오클라호마주에 위치한 '체로키 헤리티지 센터'를 방문할 수 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관련 지도와 탐방 정보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