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이 지은 베를린의 한 방공호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해 주목받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여행·문화 전문 매체 아틀라스 옵스큐라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 미테 지구의 라인하르트슈트라세에 위치한 '보로스 컬렉션'은 과거 나치 시절의 벙커를 개조한 사설 미술관이다.
이 건물은 '라이히스반벙커'라는 이름으로 1942년에서 1943년 사이 나치 당국의 명령 아래 강제노동으로 지어졌다. 당초 최대 2500명의 철도 승객을 위한 방공호로 설계됐으며, 나치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벙커는 군 교도소, 의류 창고, 열대과일 저장고 등으로 사용됐다. 특히 과일 저장고로 쓰이며 '바나나 벙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베를린의 유명 테크노 클럽으로 운영되다 1996년 폐쇄됐다.
이후 2003년 미디어 기업가이자 현대미술 수집가인 크리스티안 보로스가 건물을 매입해 5년간의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진행했다. 120개의 작은 방으로 이뤄졌던 내부는 다이아몬드 절단기를 동원한 복잡한 공사 끝에 5개 층 3000㎡ 규모의 80개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내부는 콘크리트 벽면을 그대로 노출했으며 '금연' 표지판 등 나치 시절의 흔적과 클럽 시절의 검은 페인트 자국 등을 보존해 건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건물 옥상에는 보로스 부부가 거주하는 펜트하우스가 들어섰다.
2008년 첫 전시 '보로스 #1'을 시작으로 현재 네 번째 기획전 '보로스 #4'가 열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볼프강 틸만스,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 웨이웨이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일부 작가들은 벙커라는 독특한 공간을 위해 특별히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보로스 컬렉션은 화재 안전 규정상 한 번에 12명만 가이드 투어에 참여할 수 있어 관람을 위한 대기 명단이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연광이 없는 미로 같은 구조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매체는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