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AI) 기술과 고객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파견 구축 엔지니어'가 새로운 핵심 직책으로 떠올랐으나, 정작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파견 구축 엔지니어'(Forward Deployed Engineer·FDE)는 특정 고객사에 파견돼 맞춤형 기술을 배포하고 적용하는 역할을 맡는다. 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이를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결과다.

데이터 분석업체 알파센스 자료를 보면 이 직책을 언급한 상장기업 실적 발표 건수는 2024년 8건에서 2025년 50건으로 급증했다. 구인 사이트 인디드에서도 관련 채용 공고가 같은 기간 10배 이상 늘어나는 등 수요는 높다.

문제는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채용업체 베츠 리크루팅의 패트릭 켈렌버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WSJ에 "모두가 FDE를 원하지만, 시장에서 이 역할을 원하는 엔지니어는 10%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이 FDE를 기피하는 이유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높은 업무 강도 때문이다. 과거 팰런티어에서 FDE로 근무했던 배리 맥카델 헥스 최고경영자(CEO)는 "잦은 출장과 조명이 어두운 창문 없는 회의실에서의 고된 작업"을 의미한다며 "결코 화려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진짜 엔지니어링'이 아니라는 낮은 명성 또한 기피 현상의 주된 원인이다. pgEdge의 필립 메릭 최고제품책임자는 "엔지니어들은 보통 고객을 지원하기보다 제품 자체를 만드는 일을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수백만명이 사용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핵심 업무로 여기는 문화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물론 FDE가 갖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과거 FDE로 일했던 조 헨케는 "자신의 일이 현실 세계에 변화를 만드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어 매우 의미 있었다"고 회상했다. 키스 볼린저 구글 클라우드 부사장 역시 "상아탑에 갇힌 이론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가치를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높은 연봉과 AI로 인한 기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자리 감소 위협 등이 맞물리면서 점차 FDE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켈렌버거 COO는 "스트레스가 큰 만큼 더 많은 기회가 있는 분야"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