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하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공급망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이날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 대비 9.1% 급등한 배럴당 100.38달러에 거래됐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역시 8.6% 오른 94.73달러를 기록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유가 급등세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호주커먼웰스은행(CBA)은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유가가 수요 파괴를 유발하는 수준인 배럴당 120~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벡 다르 CBA 애널리스트는 "역사상 본 적 없는 수준까지 유가가 오를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호르무즈 해협의 석유 흐름 차질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유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해협 봉쇄가 30일간 지속될 경우 4분기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76달러, 60일간 이어지면 93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공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해 회원국들의 비상 비축유 4억배럴을 방출하겠다고 밝혔으나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필립 노바의 프리얀카 사치데바 애널리스트는 "해당 물량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손실분 30일치를 겨우 감당하는 수준"이라며 "실제 구매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수 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의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노무라는 보고서에서 태국, 한국, 인도가 에너지 가격 상승에 가장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뱅크오브싱가포르는 중동 리스크가 주식 가치에 미칠 위험을 고려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주식에 대한 자산 배분 비중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다만 중국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뱅크오브싱가포르는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전략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고 전력 생산에서 석유 및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4%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평균 40~50%)보다 현저히 낮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시장에서는 중동의 긴장 완화 신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당분간 높은 유가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XS닷컴의 린 트란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가에 계속 반영되면서 단기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긴장 완화 조짐이 보여야 공급 우려가 해소되고 유가가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