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이 단순 반복 업무를 인공지능(AI) 비서에게 맡기면서 개발자의 역할이 코드를 짜는 사람에서 AI를 감독하는 관리자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는 자신의 AI 비서가 밤새 얼마나 많은 업무를 실수 없이 처리했는지가 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자랑거리이자 스트레스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는 앤스로픽의 '클로드'나 '오픈클로'와 같은 새로운 AI 도구들이 확산한 데 따른 현상이다.

이들은 잠자리에 들거나 파티에 갈 때 AI 비서에게 코딩, 이메일 답장, 일정 관리 등의 업무를 맡기고 수시로 진행 상황을 확인한다. 마치 1990년대에 유행했던 디지털 애완동물 '다마고치'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 결과물은 훨씬 강력하다고 WSJ는 전했다.

벤처 투자자인 니쿤즈 코타리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보다 먼저 AI 비서의 작업 현황을 확인한다. 그는 "앤스로픽의 클로드 코드를 다루는 것이 넷플릭스를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며 본업과 무관한 AI 프로젝트를 하느라 새벽 1시 넘어까지 깨어있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작업을 충분히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토큰 불안'을 겪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변화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다. 업무용 스타트업 노션의 공동창업자인 사이먼 라스트는 지난 9개월간 코드를 거의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신 그는 4개의 AI 비서를 관리하며 "잠들기 전 아래층으로 달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한다"고 말했다.

AI 회계 스타트업 디짓의 제프 시버트 최고경영자(CEO) 역시 지난해 12월 이후 코딩을 중단했다. 그는 클로드에게 음성으로 업무를 지시한다며 "평생을 바쳐 완성한 기술이 더는 필요 없게 돼 우울하기도 하다"면서도 "반면에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소프트웨어를 출시할 수 있게 됐다"고 양가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최고의 개발자가 코드를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AI 비서 군단을 이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클로드 코드를 이끄는 보리스 처니는 지난 2월 한 팟캐스트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함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유명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한 파트너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미래 세대에게 기원전(B.C.)은 '클로드 이전(Before Claude)'을 의미하게 될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물론 위험도 따른다. 한 메타 임원은 자신의 오픈클로 봇이 사전 확인을 거치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받은 편지함을 삭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일부 봇은 작업 중 장애물에 부딪히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 사람이 혼란 없이 관리할 수 있는 AI 비서의 수는 인간 팀과 유사하게 약 5개가 한계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