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블룸버그통신은 모스크바 소재 법무법인 FTL 어드바이저스를 인용해 지난해 러시아에서 신규 설립된 사모재단 수가 전년 대비 200% 이상 급증해 총 600개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서방 제재와 맞물려 러시아 정부가 자산의 본국 송환을 장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사모재단은 신탁과 유사한 금융 수단으로, 설립자가 지정한 수혜자들을 위해 자산을 관리하는 법인이다. 러시아 정부는 2022년 초 사모재단 관련법을 시행했으나 초기에는 등록 절차가 복잡해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2024년 개정안을 통해 절차를 간소화하고 설립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옵션을 도입하면서 신규 등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부유층의 자본을 국내에 묶어두려는 러시아 정부의 광범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FTL 어드바이저스의 마리아 쿠클라 파트너는 "정부가 부유층의 자본을 본국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법적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2018년 칼리닌그라드와 프리모르스키 지역에 세금 혜택을 주는 특별행정구역을 만들고 2020년에는 키프로스 몰타 등과 이중과세 방지 협정을 개정해 해외 자산 보유 비용을 높여왔다.
사모재단으로 이전되는 자산 규모도 상당하다. 컨설팅 회사 ASB 컨설팅 그룹이 설립을 도운 50여개 재단의 총자산은 3000억루블(약 5조47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FTL 어드바이저스에 따르면 신규 재단 한 곳에 이전되는 자산은 평균 10억~30억루블이며 주로 사업 지분 부동산 유가증권 미술품 등이 포함된다.
부호들이 사모재단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자녀 등 후대에 자산을 안전하게 승계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재단 명의로 자산을 보유해 실소유주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돼 익명성이 보장된다. 설립 후 3년이 지나면 설립자의 파산 시에도 재단 자산이 채권자로부터 보호될 수 있으며, 수혜자가 받는 자산이나 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도 주어진다.
하지만 사모재단이 모든 위험을 막아주는 해결책은 아니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자문사 피닉스 파트너스의 크세니아 파블로바 파트너는 "주주 명부를 가리는 보호 장치로는 좋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한계를 지적했다. 설립자나 수혜자 정보가 대중에게는 익명이지만 정부 당국에는 공개되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자산 압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때문에 러시아 부호들은 자국 내 자산은 사모재단에, 해외 자산은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관할권에 두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 쿠클라 파트너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어진 제재는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법률적 불확실성도 남아있어 일부 자산가들은 법원의 판례가 쌓이기를 기다리며 관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