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유력 일간지가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가짜 인물의 인터뷰를 싣고 존재하지 않는 중동발 대피 항공편을 홍보하는 기사를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벨링캣은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최대 일간지 '더 텔레흐라프'(De Telegraaf)가 지난 5일 보도한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해당 기사는 이란의 미사일 공습 이후 중동에 발이 묶인 네덜란드인들을 위해 '타마라 하레마'라는 여성이 1인당 1600유로(약 266만원)를 받고 자체 대피 항공편을 마련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사에는 두바이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하레마의 사진도 함께 실렸다. 그러나 벨링캣의 분석 결과 이 사진은 AI로 생성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기사에서 언급된 항공편 역시 운항 기록이 없는 '유령 항공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벨링캣에 따르면 하레마의 사진 배경에 보이는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의 모습이 실제 건물과 구조적으로 달랐다. 또한 옷과 장신구, 호텔 가구 등에서도 AI 생성 이미지의 특징인 비정상적인 세부 묘사가 다수 발견됐다. 벨링캣은 하레마라는 인물과 일치하는 어떤 신원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레마는 인터뷰에서 3월 7일 오만 무스카트에서 네덜란드로 향하는 232석 규모의 에어버스 A321 항공편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공편 추적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의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당일 해당 노선을 운항한 A321 기종은 전무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더 텔레흐라프는 기사에서 하레마의 사진을 삭제하고 "사진이 우리 저널리즘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명을 덧붙였다. 신문사 측은 오랜 정보원이었던 치즈키 룬스타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하레마와 접촉했으며, 그가 제공한 메시지를 바탕으로 인용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벨링캣은 룬스타인의 신원을 추적한 결과, 그가 자신의 법률 회사가 파산한 뒤 고객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두바이로 이주한 변호사라는 다른 네덜란드 언론의 과거 보도를 찾아냈다. 룬스타인은 벨링캣과의 통화에서 하레마를 안다고 시인했지만, 신원 확인 요청에는 협조를 거부했다.
이번 사건은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귀국을 희망하는 교민들의 불안감을 이용한 신종 사기 범죄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AI 기술이 정교한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 악용될 수 있으며, 언론사조차 검증 과정에서 쉽게 속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