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발 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에 유럽중앙은행(ECB) 내에서 조기 긴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시장은 이미 오는 7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며 2022년의 정책 실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매파(통화긴축 선호)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1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이날 ECB가 7월까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완전히 가격에 반영했다. 이는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변화다.

ECB 내 매파 인사들은 2022년의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며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의 유력한 후임으로 거론되는 요아힘 나겔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이날 로이터에 "매우 경계해야 한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이 중기적으로 광범위한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ECB는 적시에 단호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ECB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인플레이션 급등을 '일시적' 현상으로 간주해 정책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22년 2월까지 8개월간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2%에서 6% 가까이 치솟는 동안에도 ECB는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다.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며 물가상승률이 10%를 넘어서자 ECB는 14개월 만에 금리를 0% 미만에서 4%까지 급격히 인상해야 했다. 이사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는 이를 두고 "고인플레이션 사태로 인한 상처가 남아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또 다른 잠재적 후임인 클라스 노트 전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역시 최근 "2021년과 2022년의 교훈은 에너지 충격과 같은 공급 충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2차 효과를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ECB는 2022년과 2023년의 정책 대응을 다시 참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루이스 데긴도스 ECB 부총재는 "냉정한 머리가 필요하다"며 섣부른 대응이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통화·재정 정책이 2021년보다 긴축적인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점, 이번 에너지 공급 충격이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과 달리 비교적 일시적일 수 있다는 점도 반론의 근거로 제시된다.

현재로서는 ECB가 향후 더 강력한 긴축을 피하기 위해 조기에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만약 에너지 가격이 단기간에 안정되지 않을 경우, ECB가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억제하기 위한 '경고성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