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이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에 약물 대신 낚시나 미술 활동 같은 사회적 활동을 처방하는 '사회적 처방'이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1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지난 5년간 550만건 이상의 사회적 처방을 연계하며 비약물 치료법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당초 예상치인 90만건을 6배 이상 뛰어넘는 수치다.
영국 켄트주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캐스트 어 소트'(Cast a Thought)는 NHS와 연계해 사회적 처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단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만성우울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4차례의 무료 낚시 여행을 제공하는 '피시 앤 챗'(Fish and Chat) 세션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50대 남성 스티븐씨는 블룸버그에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 의사가 사회적 처방을 권했고 낚시를 선택했다"며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치료사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회적 처방은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하는 추세다. 네덜란드는 15년 전부터 '처방에 의한 웰빙' 서비스를 통해 자전거 클럽이나 박물관 방문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덴마크에서는 산후우울증 감소를 위해 신생아 엄마들의 합창 활동을 장려하는 프로젝트가 도입됐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일부 주에서 시범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캠페인 단체인 '소셜 프리스크라이빙 USA'(Social Prescribing USA)는 2035년까지 모든 미국인이 미술 치료나 자연 활동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의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는 의료 수요를 폭증시켰지만 의료 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1100만명의 보건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회적 처방은 예방 중심의 환자 맞춤형 접근법으로 병원 대기 명단이나 약물 과잉 의존 같은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데이지 팬코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는 저서 '아트 큐어'(Art Cure)를 통해 사회적 처방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악기 연주나 뜨개질 같은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한계와 비판도 존재한다. 호주 서던크로스대학의 제임스 베이커 부교수는 "사회적 처방은 표준화된 무작위 대조 시험이 어려워 전체 프로그램의 효과를 측정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한 열악한 주거 환경이나 저임금 같은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임시방편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사회적 처방이 단절된 사회적 연결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소셜 프리스크라이빙 USA를 공동 설립한 앨런 시겔 박사는 "치료의 대부분은 병원 밖에서 이뤄진다"며 "사회적 처방은 환자의 삶에 개입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