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1990년 민주화 이후 가장 우파 성향으로 평가받는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이 취임하며 '질서의 시대'를 선언하고 전임 정부에 대한 비판에 나섰다.
1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카스트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서 취임 선서를 한 뒤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에서 취임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 앞서 국경 안보 강화, 정부 지출 감사, 관료주의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6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다.
카스트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나쁜 상태의 나라를 물려받았다"며 "칠레를 위한 새로운 시대, 질서와 자유, 정의의 시대를 시작할 기회를 맞았다"고 밝혔다. 이는 범죄와 불법 이민에 맞서고 경제를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비상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그의 계획을 재확인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동맹인 카스트 대통령의 등장은 전임자인 가브리엘 보리치 전 대통령의 좌파 노선에서 급격한 우회전을 예고한다. 보리치 전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메릴랜드 대학의 지안카를로 비스콘티 정치학 교수는 블룸버그에 "카스트 대통령이 첫 연설에서 이전 행정부를 직접 공격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취임 초기 몇 달간 보리치 정부에 대한 많은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스트 대통령 앞에는 분열된 의회, 예상보다 큰 재정 적자, 중동 전쟁 확대로 인한 유가 및 가스 가격 급등 등 여러 난제가 놓여있다.
변호사이자 전직 하원의원인 카스트(60) 대통령은 공화당을 창당했으며, 지난 12월 결선투표에서 압승을 거두기 전 두 차례 대선에 출마한 바 있다. 그의 승리는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집권한 남미의 반기득권·반범죄 물결의 일부로 해석된다.
그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 통상적인 관례를 깨고 해외 순방에 나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 우파 지도자들과 만나 이민 문제를 논의했다. 또한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과 회동하고 악명 높은 대규모 교도소를 둘러보기도 했다.
카스트 내각에는 재무장관에 호르헤 키로스, 외무장관에 프란시스코 페레스 마케나 전 퀴넨코 최고경영자(CEO) 등이 임명되는 등 정치 거물급 인사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그가 약 8조6400억원(60억달러) 규모의 공공지출 삭감 등 현안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낼 정치력과 행정 경험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날 취임식 분위기는 카스트 대통령의 우파적 면모를 반영했다. 행사장에서는 1973년 쿠데타로 실각한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의 동상이 가려졌고, 이스라엘, 쿠바, 베네수엘라 국기가 등장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행사에 참석한 대학생 토마스 마르티네스(19)씨는 "미국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세계 최대 강국의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지자 에스테르 바스케스(55)씨는 "그가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믿는다"며 "범죄와 외국인 문제로 나라가 나빠졌는데 큰 희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