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부당해고 보상금 상한선을 폐지하기로 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권 종사자들의 소송이 봇물을 이룰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 노동당 정부는 '고용 권리법' 개정을 통해 오는 2027년 1월 1일부터 부당해고에 대한 보상금 상한 제도를 폐지한다. 현재 영국 노동심판원은 부당하게 해고된 직원에게 최대 11만8223파운드(약 1억7000만원)까지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불필요하게 복잡한 소송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해고자들이 더 많은 보상금을 받기 위해 부당해고와 차별을 동시에 주장하며 소송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과부하 상태인 노동심판 시스템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정부 자체 경제 분석 보고서에서조차 이번 개혁이 고액 연봉자들에게 전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더 큰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보상 상한 폐지가 가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고소득 근로자와 같은 일부 집단은 특히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명시했다.

법조계와 재계는 소송 급증으로 인한 시스템 마비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영국 채용고용연맹의 닐 카버리 최고경영자(CEO)는 "고액 소송으로 노동심판 시스템이 과부하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시스템은 현재 거의 마비 상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해당 법안이 성급하게 추진됐다고 덧붙였다.

런던의 법무법인 BDBF의 클레어 도슨 파트너 변호사 역시 "은행가와 고위 임원들이 보너스, 이연 보상, 주식 손실 등을 청구하는 복잡한 부당해고 소송이 쇄도할 위험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로 인해 "심판 시스템의 모든 청구인들이 더 심각한 지연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노동계는 이번 조치가 사측의 무분별한 해고를 막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했다. 영국 방송연예통신연극 노조의 키렌 월터스 국장은 "고용주들이 부당하게 직원을 해고하고 소송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더 나은 동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악덕 기업들이 기존 보상 상한액을 '사업 비용' 정도로 취급해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영국에서는 보상 상한이 없는 차별 소송 등에서 거액의 보상 판결이 나온 바 있다. 2022년 BNP파리바는 남성 동료보다 적은 임금을 받은 직원 스테이시 맥켄에게 동일임금 소송에서 200만파운드(약 28억8000만원)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같은 해 골드만삭스의 전 직원은 내부고발자 해고를 이유로 2000만파운드(약 288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가 합의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케이트 디어든 영국 고용권리부 장관은 "상한선이 폐지되더라도 대부분의 보상액은 현재 상한선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2023-24년 부당해고 보상액 중간값은 6746파운드(약 971만원)에 불과했다. 디어든 장관은 "중요한 것은 고용주 처벌이 아니라 성공한 청구인이 입은 손실을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