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완료된 3차 상법 개정으로 자기주식의 취득 후 소각이 의무화되면서, 이를 재무 및 지배구조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 온 기업들의 재무 융통성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0일 한국신용평가는 '상법 개정(1차~3차)에 따른 영향 점검'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주주 친화 정책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채권자의 지위가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상법 개정의 핵심은 지난 6일 공포·시행된 3차 개정안에 담긴 자기주식 관련 규제다. 개정안은 기업이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원칙적으로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했다. 법 시행 전 보유하던 자기주식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뒀다.

또한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인수권과 배당수령권 등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를 금지하고, 자기주식을 담보로 한 자금 조달이나 교환사채(EB) 발행도 막았다. 합병이나 분할 시 자기주식에 신주를 배정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번 조치로 자기주식을 활용한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지가 상당 폭 제약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기업들은 자기주식을 활용해 교환사채를 발행하며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백기사 확보 등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인수합병(M&A) 과정에서도 유연한 구조 설계에 자기주식을 활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자기주식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은 롯데지주(30%), 대한방직(32%), SK(25%), HDC(17%) 등이다. 금융권에서는 신영증권(50%), 미래에셋생명(34%), 부국증권(35%), 현대해상(23%) 등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 향후 재무 전략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상법 개정을 앞두고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가 예고되자 2025년 자기주식 취득액은 17조7000억원으로 전년(14조2000억원) 대비 급증했다. 자기주식을 활용한 교환사채 발행 역시 2024년 4조7789억원으로 2023년(1조9841억원)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한국신용평가는 주주가치 제고라는 긍정적 효과 이면에 채권자의 지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에 기업의 재원이 집중될 경우 채권 변제를 위한 재원이 줄어들며 '주주와 채권자 간 부의 이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주주친화적 의사결정이 심화될 경우 채권자의 회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향후 회사채 발행 시 보다 보수적인 재무 약정을 설정하는 등 채권자 보호 수단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번 상법 개정은 1·2·3차에 걸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 명시 △독립이사 비율 상향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대규모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완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