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와 닷지의 모회사인 스텔란티스가 전기차(EV) 투자 실패로 265억달러(약 38조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미국 빅3 자동차 업체 중 최대 타격을 입었다고 경제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제너럴모터스(GM)의 76억달러, 포드의 195억달러 손실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스텔란티스는 이번 평가손에 대해 전기차 관련 손실 규모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 소식이 알려진 직후 스텔란티스의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약 25%가 증발했다.

전기차 수요 급감과 정치 환경 변화는 모든 자동차 업체가 직면한 문제지만, 스텔란티스는 기술 발전과 소비자 취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오랜 실패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매체는 분석했다.

설상가상으로 스텔란티스는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지프 4xe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32만대를 리콜하는 등 품질 문제로 167억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 시장에서 스텔란티스의 전기차는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닷지 차저 데이토나는 전기 머슬카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찬 시도였지만 실패했고, 결국 가솔린 버전을 추가해야 했다. 지프 왜거니어 S EV는 옵션 포함 7만달러가 넘는 가격에 판매 부진을 겪었다.

이에 스텔란티스는 전통적 강점인 대형 SUV와 픽업트럭에 다시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회사는 2026년 멕시코 살티요 공장에서 헤미(Hemi) V8 엔진 10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는 현재 생산량의 3배 규모로, 램 1500 픽업트럭과 지프 랭글러 등에 탑재될 예정이다.

안토니오 필로사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애널리스트 콘퍼런스 콜에서 "트럼프 대통령 덕분에 내연기관과 전기차 버전 간 판매 비율 선택에 더 많은 유연성을 갖게 됐다"며 "이는 우리에게 상당한 추가 이익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비 및 배출가스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지난주에는 온실가스를 공중보건과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해 환경보호청(EPA)의 규제 권한을 부여한 '위해성 판정(endangerment finding)'을 폐기했다.

이제 자동차 업체들은 배출가스나 연비 기준 미달에 따른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며, 테슬라 같은 업체로부터 비싼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거나 수익성 없는 전기차 개발에 수십억달러를 쓸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스텔란티스의 문제는 전기차 실패보다 훨씬 깊다.

회사의 핵심 제품인 램 픽업트럭 판매는 한때 포드 F-150을 제치고 1위에 올랐지만 이후 급락했다. 2025년형 램의 재설계 과정에서 생산 차질, 품질 결함, 저렴한 '클래식' 모델 단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더 심각한 것은 주류 시장 부재다. 스텔란티스는 2026년 지프 체로키 하이브리드 SUV 출시 전까지 도요타 RAV4, 혼다 CR-V 같은 인기 컴팩트 SUV 부문에 제대로 된 경쟁 모델이 없었다.

S&P글로벌 모빌리티의 톰 리비 산업분석 디렉터는 "그것이 바로 시장의 중심이며, 한국과 일본 업체들이 그 부문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S&P 집계 기준 33개 시장 세그먼트 중 컴팩트 SUV는 미국 전체 판매의 21%를 차지한다. 리비는 "스텔란티스는 사실상 시장의 5분의 4에서만 경쟁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잦은 경영진 교체도 문제다. 필로사는 2024년 12월 카를로스 타바레스의 갑작스러운 사임 이후 새로 부임한 CEO다. 타바레스는 판매 부진과 무자비한 비용 절감으로 딜러, 공급업체, 전미자동차노조(UAW), 주요 주주, 이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반발에 직면했다.

리비는 "계속 방향을 바꾸면서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푸조와 시트로엥 브랜드가 견조한 전기차 판매를 보였지만, 유럽연합(EU)이 2035년 전기차 의무화를 완화하자 스텔란티스는 최소 7개 유럽 모델에 디젤 엔진을 부활시킬 계획이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중국 업체들이 디젤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를 현명한 전략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디젤차 비중은 2015년 절반 이상에서 현재 7.7%로 급감했다. 반면 전기차는 BYD 등 중국 업체의 진입으로 거의 20%까지 상승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란치아, 복스홀, DS 등 유럽에서 불필요한 브랜드를 포함해 14개의 핵심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7개 브랜드를 운영하지만 GM의 쉐보레, 포드, 도요타, 혼다 같은 주류 기둥 브랜드가 없다.

알파로메오는 지난해 미국에서 5천600대, 피아트는 1천300대만 팔렸다. 캐딜락처럼 고마진 럭셔리 브랜드도 부재하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스텔란티스의 미국 소매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8월 사상 최저인 5.4%를 기록했다. 11월 6.3%로 회복했지만, 수십년간 도요타와 혼다에 시장을 빼앗긴 데 이어 이제는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대와 기아에도 밀리고 있다.

더 심각한 지표는 고객 충성도다. S&P 측정 기준 스텔란티스의 재구매 고객 비율은 8월 약 41%까지 떨어졌다가 4분기 47%로 회복했다. 7개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는데도 현재 소유자 중 절반 미만만이 다시 스텔란티스 모델을 구매한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2개 이상 브랜드를 제공하는 업체 중 폭스바겐(44%)만이 더 낮았다.

반면 GM은 66%, 도요타 64%, 포드 61%의 고객이 같은 회사 모델을 재구매했다.

그럼에도 스텔란티스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램 픽업트럭, 지프 랭글러, 닷지 챌린저와 헬캣·데몬 파생 모델,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폴고레 등은 매력과 개성이 넘친다.

스텔란티스는 당분간 전통적 고객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화와 첨단 기술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고 매체는 강조했다. 중국 전기차는 이미 유럽에 진출했고 캐나다에도 발판을 마련했으며, 결국 미국에도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연기된 램 1500 REV 픽업트럭은 흥미로운 기술적 시도다. 이 '확장형 전기차(EREV)'는 내연기관 엔진을 오로지 배터리용 전기 생성에만 사용하고, 배터리가 바퀴를 효율적으로 구동한다. 램은 REV가 플러그인 전기만으로 145마일(약 233㎞)을 주행하며 총 주행거리는 690마일(약 1천110㎞)에 달한다고 밝혔다.

필로사는 거의 휴면 상태인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되살릴 계획이다. 할시온 콘셉트 기반의 세단(전기차 가능성)과 3만달러 미만 소형 스포츠카 등을 준비 중이다.

스텔란티스는 또 매사추세츠 기반 팩토리얼 에너지의 준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차저 데이토나 시연 차량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배터리를 장착한 약간 개조된 메르세데스 EQS 세단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스웨덴까지 749마일(약 1천205㎞)을 주행했으며, 85마일(약 137㎞)의 잔여 주행거리를 남겼다.

패스트컴퍼니는 "스텔란티스가 장거리 주행과 급속 충전이 가능한 고체 배터리 기술의 선두에 설 수 있다면,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 최고의 리튬이온 기술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체는 "500마일(약 805㎞) 주행거리와 15분 충전을 보여준다면, 전기차 팬들도 생애 처음으로 닷지나 크라이슬러, 램을 고려할 수 있다"며 "스텔란티스의 시간은 촉박하지만 변화하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