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 맥스 드라마 '더 핏(The Pitt)' 시즌2 7화에서 건설 노동자 올란도 디아즈는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는다. 당뇨병성 케톤산증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온 그는 의식을 되찾은 뒤 입원을 거부한다. 이미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의 의료비 부채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메디케이드 자격을 받기엔 소득이 많지만 민간 의료보험을 감당할 만큼 벌지는 못하는 그는 인슐린을 아껴 쓰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올란도의 이야기는 의료비 부채를 안고 살아가는 1억 명 이상의 미국인에게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다. 카이저가족재단(KFF)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지고 있는 의료비 부채는 최소 2200억 달러에 달한다.

갤럽 조사에서는 2024년 한 해에만 가정들이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빌린 돈이 740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 통계에는 높은 이자율의 신용카드로 떠안은 의료비 부채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더 핏'의 총괄 프로듀서인 캐리 삭스와 비영리단체 언듀 메디컬 데트(Undue Medical Debt)의 최고경영자(CEO) 앨리슨 세소는 11일(현지시간) 공동 기고문을 통해 "의료비 부채는 파산의 주요 원인이 됐으며, 재정적 부담을 넘어 사람들을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만든다"고 밝혔다.

언듀 메디컬 데트는 의료비 부채를 매입해 탕감해주는 유일한 비영리단체다. 2014년 이후 1400만 가정의 250억 달러가 넘는 의료비 부채를 탕감했다.

미주리주의 네 자녀를 둔 싱글맘 제니퍼는 부채 탕감 통지를 받은 뒤 서면 증언을 통해 "보험이 있었지만 많은 서비스가 보험 적용 밖이었거나 숨겨진 비용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식료품과 공과금을 줄이면서 청구서를 감당하기 위해 불가능한 선택을 해야 했다"며 "그 부채의 무게는 재정뿐 아니라 내 건강, 인간관계, 그리고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언듀의 의사·환자 대상 연구에 따르면 의료비 부채는 치료적 관계를 훼손한다. 치료가 중단되고 약을 쪼개 먹으며 복용량을 줄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면 결과는 확실히 나빠진다.

기고자들은 "미국 의료 시스템의 복잡한 현실에 대한 해결책은 찾기 어렵고 연방 차원의 정치적 합의도 부족하다"며 "이 망가진 시스템에 갇힌 환자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은 그들의 고립감을 덜어줄 뿐 아니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1970년대 '올 인 더 패밀리'가 인종차별과 성차별, 계급주의를 조명했고, '더 와이어'는 빈민가 삶을 인간적으로 그려냈으며, '윌 앤 그레이스'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진전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제니퍼는 증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의료비 부채는 누구도 선택하지 않지만, 우리 같은 가정을 재정적 파탄으로 몰아갈 수 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의료 시스템 변화의 긴급한 필요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 더 많은 투명성, 더 나은 보험 보호, 그리고 이익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더 핏'에서 올란도는 의학적 권고를 무시하고 병원을 떠나겠다고 고집한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두 번째 직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 머무는 매 순간이 식사, 신발, 학용품"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사미라 모한은 그를 설득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약품과 물품을 큰 가방에 담아 가져왔지만, 돌아왔을 때 올란도는 이미 떠난 뒤였다. 주치의 잭 애봇은 자비로 그 짐을 올란도의 집으로 배송했다.

기고자들은 "그들의 연민과 관대함은 존경스럽지만, 그런 행동이 필요해서는 안 된다"며 "미래에는 올란도의 이야기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고 언듀가 문을 닫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들은 "그때까지 우리 모두는 의료비 부채 문제를 조명 아래로 끌어내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