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현지시간) 84세로 별세한 제시 잭슨 목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흑인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 회복에 기여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제자였던 잭슨 목사는 1980년대 후반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원들 및 다른 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용어 변화를 촉구했다. '유색인(colored)'과 '흑인(blacks)' 대신 공동체의 조상 뿌리를 더 잘 대표하고 존엄성을 부여하는 용어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잭슨 목사는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불리는 것은 문화적 온전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를 적절한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나라의 모든 민족 집단은 어떤 기반, 즉 역사적·문화적 기반에 대한 참조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킹 목사 암살 이후 수십 년간 인권운동을 이끌며 두 차례 대선에 출마한 잭슨 목사는 희귀 신경질환을 앓아왔다. 시카고 자택에서 가족들에 둘러싸여 사망했다고 그의 딸 산티타 잭슨이 화요일 확인했다.

잭슨 목사는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투표권과 일자리, 교육 기회를 옹호했다. 흑인 자긍심 제고를 위한 목소리를 높였으며, 흑인 공동체 내부에서 나온 용어 변화가 자존감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용어는 잭슨 목사와 NAACP의 주도보다 훨씬 전부터 일부 학자들이 사용했다. 그러나 잭슨 목사가 공동체의 지지를 이끌어낸 후에야 일반 용어로 자리 잡았다.

예일대 법학도서관 사서 프레드 R. 샤피로의 연구에 따르면 이 용어는 1782년 필라델피아에서 출판된 설교문 팸플릿 제목 페이지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By an African American)'라는 표현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잭슨 목사는 자신들이 어떻게 불리거나 인정받는지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던 다른 소수 집단들의 움직임에서 힌트를 얻었다.

1990년대에는 '라티노(Latino)'와 '히스패닉(Hispanic)'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1990년 인구조사에서 하와이 원주민과 기타 태평양 섬 주민들을 처음으로 별도 항목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적으로 로비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대중화는 그해 인구조사에는 늦었다. 그러나 인구조사국은 "흑인 또는 니그로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포함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흑인인 사회학자 월터 앨런은 1989년 1월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이 용어의 채택을 "중요한 심리적·문화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잭슨 목사가 흑인 단체 75개를 소집한 회의로부터 한 달 뒤였다. 친목회, 여성친목회, 옹호단체, 사회단체 등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주최 측은 변화에 찬성하는 "압도적 합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시카고와 애틀랜타의 일부 교육구는 신속하게 이 용어를 채택해 교육과정에 반영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흑인(Black)'과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는 용어가 종종 혼용된다. 다만 '흑인'이 더 포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용어는 더 넓은 의미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출신 사람들도 포함할 수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용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 표현이 미국인 정체성에 수식어를 붙이거나 실제 경험을 반드시 반영하지 않는 아프리카와의 현대적·개인적 연결을 암시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