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세계 원유 공급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 에너지 위기 경고등이 켜졌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란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정유공장과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시설의 가동이 중단됐다. 이 여파로 세계 원유 생산량의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통행량은 지난 일요일 94% 급감하며 사실상 봉쇄 상태에 들어갔다.

사태 직후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은 급등했다. 브렌트유는 지난해 6월 이후 최고치로 올랐고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39% 급등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분쟁이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둔다. 이 때문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와 비교하면 가격 상승 폭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원유 컨설턴트인 게리 로스 블랙 골드 인베스터스(Black Gold Investors) 매니저는 "이란 정권은 존립의 위협을 받고 있어 세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며 "분쟁이 길어질수록 가격이 더 오를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특히 LNG 시장은 원유보다 충격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LNG 공급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카타르 라스라판 시설의 가동 중단은 전례 없는 일이다. 리처드 프랫 프리시전 LNG 컨설팅 관계자는 "LNG는 원유보다 저장 능력이 훨씬 낮아 현물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시장이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셰일 혁명'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셰일 에너지 개발로 세계적인 석유 및 가스 수출국으로 변모하면서 글로벌 공급에 여유가 생겼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에서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송유관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시장의 불안을 다소 완화하는 요인이다. 사우디는 하루 500만배럴, UAE는 150만배럴을 각각 홍해와 오만만으로 수송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25일 이상 지속되면 중동 산유국들이 감산을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그룹은 이란 내 분쟁이 장기화해 에너지 인프라가 타격을 입는 최악의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태로 각국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카타르산 LNG 의존도가 99%에 달하는 파키스탄은 에너지 안보에 직격탄을 맞았다. 수입량의 절반을 의존하는 인도 역시 비상이 걸렸다. 반면 미국은 자체 생산 덕분에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하며 러시아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수혜를 볼 전망이다.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은 "얼마나 많은 공급이, 얼마나 오랫동안 중단될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역사상 가장 큰 원유 공급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시나리오가 고려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