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인공지능(AI)을 통해 1990년대식 경제 호황을 재현하겠다며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인사를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했다.
AP통신은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현 의장의 후임으로 케빈 워시를 지명했으며, 이는 AI가 가져올 생산성 혁명을 통해 저물가·고성장을 달성하려는 구상의 일환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AI가 1990년대 인터넷처럼 생산성을 대폭 높여 금리를 낮출 여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는 인터넷 기술 확산에 힘입어 1997~2000년 4년 연속 4%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생산성 향상을 근거로 금리 인상을 보류했고, 이는 경제 호황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그린스펀과 같은 '열린 마음'을 가진 인물이 연준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워시 지명자 역시 AI가 가져올 생산성 향상이 금리 인하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과거 그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리 인하에 반대하며 보였던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성향과는 상반된 입장이다.
그러나 다수 경제 전문가는 이러한 구상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TS 롬바드의 다리오 퍼킨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1990년대 상황을 다소 왜곡되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AI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불확실하다고 본다. 컨설팅 회사 RSM의 조 브루수엘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생산성 향상이 "AI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의 자동화 투자 결과"라고 분석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틴 베일리 선임연구원도 기업이 AI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법을 익히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산성 향상이 반드시 금리 인하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마이클 바 연준 이사는 최근 연설에서 기업들이 AI에 투자하기 위해 차입을 늘리면 오히려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린스펀 의장의 사례를 일부만 인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린스펀은 1999년 중반부터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1년도 안 돼 기준금리를 4.75%에서 6.5%로 대폭 인상하며 긴축으로 전환했다.
현재 경제 환경이 1990년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90년대에는 정부 재정이 흑자였지만 지금은 막대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가 누적된 상태다. 또한 당시에는 세계화가 물가 안정을 도왔지만, 현재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탈세계화 흐름이 뚜렷하다.
워시 지명자가 취임할 경우 연준 내부에서 정책 방향을 둘러싼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90년대 후반과의 비유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당시 그린스펀은 금리 인하가 아닌 '인상 보류'를 결정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