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가이자 성범죄자인 제프리 엡스타인이 노벨평화상 위원회 전 위원장과의 친분을 반복적으로 과시하며 빌 게이츠, 리처드 브랜슨 등 글로벌 엘리트들을 자신의 네트워크로 끌어들인 정황이 드러났다.
미국 법무부가 지난달 공개한 수백만 건의 엡스타인 관련 문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를 이끈 토르비에른 야글란이 수백 차례 언급됐다고 미국 AP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엡스타인은 2010년대 뉴욕과 파리 소재 자신의 저택에 야글란을 초대한 사실을 빌 게이츠, 리처드 브랜슨,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스티브 배넌 등에게 거듭 알렸다.
2018년 9월 엡스타인은 배넌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월요일에 노벨평화상을 결정할 사람과 네가 친구가 된 걸 도널드(트럼프)가 알면 머리가 터질 것"이라고 썼다. 그는 "우리가 중국 문제를 해결하면 내년에는 네가 수상자가 돼야 한다고 그에게 말했다"고 덧붙였다.
2013년 엡스타인은 영국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해 9월 야글란이 자신과 함께 머물 예정"이라며 "당신이 거기 있다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전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법률고문을 지낸 캐시 루엠러는 엡스타인으로부터 "노벨평화상 위원장이 방문하는데 함께하겠느냐"는 이메일을 받았다.
엡스타인은 2012년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겸 하버드대 총장에게도 "노벨평화상 위원장이 나와 함께 머문다"며 "관심 있으면 만나라"고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엡스타인은 노르웨이 전 총리이자 유럽평의회 전 사무총장인 야글란을 "똑똑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2014년에는 빌 게이츠에게 야글란이 유럽평의회 사무총장으로 재선됐다고 알렸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이자 당시 세계 최고 부호였던 게이츠는 "좋은 소식"이라며 "노벨평화상 위원회 직책도 유지되는 건가"라고 답했다.
야글란이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기 노벨위원회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과 2012년 유럽연합에 평화상을 수여했다. 문서상으로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직접적인 로비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AP는 전했다.
한편 노르웨이 경제범죄수사대는 야글란을 '중대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경제범죄수사대는 야글란의 지위와 관련해 선물, 여행, 대출 등을 받았는지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수사팀은 14일 오슬로에 있는 야글란의 자택과 남부 리쇠르, 서부 라울란의 부동산 2곳을 압수수색했다. 야글란의 변호인단은 그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글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오슬로 평화협정 중재에 참여한 노르웨이 외교관 테리에 뢰드라르센을 통해 엡스타인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라르센과 그의 아내 역시 엡스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노르웨이에서 부패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AP통신은 CBS, NBC, CNBC 등과 협력해 법무부가 공개한 엡스타인 문서를 검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