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립 역사 유적지 절반 이상이 산불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이 중 수천 곳은 심각한 소실 위기에 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캠퍼스(UC산타바바라) 국립생태분석합성센터(NCEAS) 연구팀은 29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미국 국립사적지 목록에 등재된 10만117곳을 고해상도 산불 발생 확률 모델과 비교 분석한 결과, 3446곳이 심각한 소실 위험에 처한 것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대체 불가능한 문화유산이 예상치 못한 큰 위협에 직면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위험에 노출된 유적지의 36%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산불로 인한 문화유산 소실은 계속되고 있다. 2025년 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팰리세이즈 산불'은 윌 로저스 목장 주택을 파괴했으며, '이튼 산불'은 앤드루 맥널리 주택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같은 해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을 덮친 '드래곤 브라보 산불'은 1927년에 지어진 그랜드캐니언 로지를 전소시켰다.

논문의 교신 저자인 케이틀린 퐁 연구원은 "역사적인 장소들은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 집단적 기억, 국가 유산의 기반"이라며 "일반 주택과 달리 한번 파괴되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역사적인 건축물이 산불에 특히 취약하다고 설명한다. 가연성 지붕, 노후된 외장재, 바람에 날린 불씨가 쉽게 침투할 수 있는 건축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직접적인 화염보다 멀리서 날아온 불씨가 지붕이나 건물 틈새에 옮겨붙어 화재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에 따르면 위험이 큰 문화유산은 주로 미국 서부에 집중돼 있지만, 최근에는 남동부와 중남부 주에서도 새로운 위험 지역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캘리포니아, 오리건, 콜로라도 등 기존 산불 피해 지역의 패턴과 일치하면서도, 보존 프로그램의 관심이 필요한 새로운 지역이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기후변화가 문화유산에 대한 산불 위협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기온 상승, 가뭄 빈도 증가, 극심한 화재 기상 조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위험 지역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