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이란이 제재 회피 수단으로 활용해 온 암호화폐 경제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28일(현지시간)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를 인용해 지난해 이란의 암호화폐 생태계 규모가 77억8000만달러(약 11조2032억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몰디브나 리히텐슈타인 같은 일부 소규모 국가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수준으로, 전년 대비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이란 군부의 핵심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암호화폐 경제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이널리시스는 지난해 한 해 동안 IRGC와 연계된 주소로 유입된 암호화폐 가치가 30억달러를 넘어섰다고 추정했다. 이는 제재 명단에 오른 공개된 지갑 주소만을 분석한 결과로, 실제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이란은 2019년 암호화폐 채굴을 합법화했다. 허가된 채굴업자들은 보조금이 지급되는 전기를 사용해 채굴한 비트코인을 중앙은행에 판매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이 비트코인을 활용해 미국 중심의 금융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수입 대금을 결제하는 등 무역 거래에 사용해왔다. 이는 저렴한 국내 에너지를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자산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비트코인 외에 달러에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다른 분석업체 엘립틱(Elliptic)에 따르면 이란 중앙은행은 지난해에만 최소 5억700만달러 상당의 USDT(테더)를 축적했다. 이는 자국 통화인 리알화 가치를 안정시키고 무역 자금을 조달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리알화 가치는 달러 대비 96% 이상 폭락하며 사실상 실패했다.

최근 이어진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은 이러한 이란의 암호화폐 금융 시스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에너지 집약적인 암호화폐 채굴 사업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공습으로 전력망 등 기반 시설이 파괴되면 채굴량이 단기적으로 급감할 수 있다. 이란은 과거에도 전력망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계절적으로 채굴을 금지한 바 있다.

한편 이란 국민들도 통화 가치 하락과 정세 불안 속에서 비트코인을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이널리시스 데이터에 따르면 군사적 충돌이나 내부 시위 등 정치적 격변기에 개인 지갑으로의 암호화폐 인출이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