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디어 업계에서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 인수를 둘러싼 넷플릭스와 파라마운트의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양사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등 개입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업계 지형을 바꿀 이번 인수전의 향방에 관심이 쏟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2일(현지시간) 자사 팟캐스트 '스왐프 노츠'를 통해 미국 최대 미디어 기업들의 인수 경쟁과 트럼프 행정부의 역할을 집중 분석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2월 초 WBD 인수 경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파라마운트가 며칠 뒤 주당 30달러의 적대적 인수 제안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싸움이 재점화됐다.
파라마운트는 이후 WBD 이사회를 교체하기 위한 위임장 대결까지 시작했다. 최근에는 제안 조건을 일부 상향 조정했다.
올리버 반스 파이낸셜타임스 미국 딜·행동주의 담당 기자는 "파라마운트는 거래가 2026년 말까지 성사되지 않을 경우 분기당 25센트를 추가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는 "펜트워터캐피털매니지먼트 같은 WBD 대주주를 이사 후보로 영입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앙코라가 WBD 지분 2억 달러 규모를 매입하며 넷플릭스 인수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파라마운트에게 유리한 움직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도 논란이 되고 있다. 크리스 그라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로스앤젤레스 지국장은 "트럼프는 할리우드와 미디어, TV에 집착하는데 이번 인수전이 그 모든 분야를 건드린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테드 서랜도스를 전설적인 스튜디오 대표 루이스 B 메이어에 비유하며 칭찬했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 점유율이 너무 높을 것"이라는 우려도 표했다.
그는 "넷플릭스는 훌륭한 회사이고 경이로운 성과를 냈다. 테드는 대단한 사람이고 나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면서도 "시장 점유율이 많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 거래에 개입하겠다고 했다가 개입하지 않겠다고 번복하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 넷플릭스와 WBD 양사의 채권을 직접 매입해 이해관계자가 됐다.
반스 기자는 "트럼프가 개입하지 않겠다고 해도 결정권자들은 그가 보내는 신호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반독점 조사도 시작됐다. 반스 기자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주 경쟁 미디어 그룹들에 연락해 넷플릭스 인수안에 대한 실사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이번 인수가 업계 경쟁을 저해하는지, 넷플릭스가 독점 기업처럼 행동하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 다만 반독점 검토를 총괄해온 법무부 반독점국의 게일 슬레이터 국장이 어제 사임하면서 조사 방향에 변수가 생겼다.
반스 기자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엄격한 반독점 집행이 있었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 최고경영자들은 힘을 얻었다고 느낀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미 통합된 산업에서의 초대형 통합 같은 거래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와 파라마운트 양쪽 제안 모두 바이든 행정부였다면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라마운트는 오라클 공동 창업자 래리 엘리슨의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이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래리 엘리슨은 트럼프의 주요 후원자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여론전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넷플릭스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자사의 인수안이 "시장을 강화하고 건전한 경쟁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파라마운트는 넷플릭스가 "과도한 힘을 가진 거대 기업이 될 것"이라며 정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라임스 지국장은 "할리우드에서는 파라마운트와 WBD가 합쳐지면 콘텐츠 구매자가 줄어들고 일자리도 감축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HBO와 WBD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확보하면 전 세계 3억 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초대형 기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스 기자는 "3월 주주총회에서 WBD 주주들이 넷플릭스 인수안을 지지할지 거부할지 결정적인 답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파라마운트가 이길 것으로 본다. 그들이 더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에게 이번 인수는 '있으면 좋은' 전략적 움직임이지만, 파라마운트는 작은 미디어 그룹으로서 큰 야망을 가지고 있다"며 "어떤 식으로든 파라마운트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라클 주가가 최근 몇 달간 크게 하락해 래리 엘리슨의 재정적 여력이 줄어든 점은 파라마운트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라임스 지국장은 "파라마운트가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스카이댄스와 파라마운트 통합 작업을 이제 막 시작한 상황에서 WBD라는 더 큰 회사를 통합하는 것은 엄청난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튜브가 미국에서 선두 스트리밍 업체로 떠오르는 등 경쟁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1997년 DVD 우편 대여 회사로 시작해 약 10년 뒤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하며 거대한 파괴적 세력이 됐다. 파라마운트는 '대부', '타이타닉', '탑건', '트랜스포머' 등을 제작한 100년 역사의 스튜디오다.
WBD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튜디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22년 디스커버리와 워너브러더스가 합병해 탄생했다.
WBD는 지난해 여름 회사 분할 계획을 추진하던 중 파라마운트가 지난해 9월 인수 제안을 내놓으면서 이번 인수전이 본격화됐다. 이후 넷플릭스와 컴캐스트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